죽은 ‘10·4선언’ 대선 바람타고 되살아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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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 朴-文-安 ‘서해평화수역’ 만지작… 누가 돼도 재조명 가능성


4일로 10·4 남북 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5주년이 된다. 2007년 이 선언을 이끌어 냈던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는 이미 고인이 됐고, 현 정부 5년 동안 10·4선언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하지만 주요 대선주자들은 현 정부에 비해 10·4선언에 한결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며, 이때 10·4선언도 재조명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북한 어선이 잇달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긴장이 높아지는 등 서해가 ‘한반도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10·4선언의 48개 세부사업 중 ‘서해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수역 설정’이 가장 주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지난달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이 서해 NLL을 인정한다는 전제 아래 “10·4선언 합의에 포함된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 방안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10·4선언의 주역 중 한 명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고 ‘포용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서해 평화수역 문제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어느 선을 기준으로 수역을 정할 것인가, 즉 북측이 서해 NLL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측은 NLL을 부정하면서 1999년 일방적으로 서해에 ‘해상군사분계선’을 설정한 바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달 29일에도 “NLL은 미군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불법·무법의 유령 선(線)”이라며 “10·4선언에 명기된 서해에서의 공동어로와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NLL 자체의 불법·무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이전부터 장성급 군사회담 등을 통해 공동어로수역 설정 문제를 논의했지만 북측이 ‘근원문제(해상경계선 획정) 해결이 먼저’라고 주장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10·4선언 일주일 뒤 기자간담회에서 “(김정일에게) 지금 우리 의제에 (NLL을) 넣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NLL 해결은 뒤로 미루고 실용적인 문제부터 먼저 풀어 나가자(라고 얘기했다)”라고 설명했다. 2007년 12월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남측은 ‘NLL을 기준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NLL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결렬됐다.

전문가들은 서해 평화수역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중반 이후 이 문제가 남북 간의 핵심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남북 모두 군부의 동의를 얻어낸 뒤 3차 정상회담을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통해 남북 간 신뢰 분위기를 조성한 뒤 실무급, 고위급 회담에 이어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해 평화수역 설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국 내 보수세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평화수역을 설정하기 위해 NLL을 일부 양보한다면 결국 남한의 영해가 줄어들게 되고, 서해 5도 인근에서 어민들이 북측 군함과 직접 마주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서해#평화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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