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잔뜩 데리고 세종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국회에 출석했는데 국회 사정으로 회의가 연기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오늘은 허탕 쳤다’며 3시간 걸려 세종시 사무실에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여관이라도 잡아 하루 묵으며 회의를 기다려야 하나요.”
내년에 세종시로 내려가는 경제부처의 한 장관은 “정부부처 직원들을 태운 버스와 답변 자료를 실은 트럭이 여의도와 세종시를 오가는 장면이 내년부터 실제로 연출될 것”이라며 “지금의 대(對)국회 업무관행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행정부의 업무공백이 심각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올 12월 세종시 행정부 시대가 본격 개막하면서 당장에 불거질 국정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정부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회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관계부처 장관과 간부들을 참석시키는 관행을 시급히 손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행정 비효율은 개별 공무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 자원낭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국회의 대(對)정부 업무관행, 공무원의 근무환경 등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나온다. 특히 차기 정부를 책임질 유력 대선후보들과 각 정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비효율 극복을 위한 핵심 과제는 국회와 정부 간의 업무시스템 개혁이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을(乙)’인 행정부보다 ‘절대 갑(甲)’인 국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행정부 안에서 개선 움직임이 나온다 한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것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국회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 행정부를 일단 부르고 보는 식으로 일하다 보니 공무원들의 소모적인 국회 출석이 너무 많은 것”이라며 “국회의 업무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세종시 시대’가 초래할 수 있는 비효율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차관의 국회 출석을 요하는 회의를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 △일부 국회 상임위원회나 간단한 법령 심사는 화상회의를 통한 처리를 의무화하는 방안 △세종시에 국회 분원이나 ‘소별관’을 세워 국정감사나 법령심의를 할 때 의원들의 현지 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 등을 거론한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행정학)는 “기업들이 고객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외치는 시대에 국회와 청와대라고 해서 권위를 앞세워 움직이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화상회의는 ‘정보기술(IT)강국’인 한국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회로 현재 기업들에서 진행하는 사례만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화상회의나 ‘스마트워크 센터(원격 사무실)’의 수준과 품질을 최대한 높이자는 것이다. 국무회의나 비상경제대책회의 등 청와대에서 열리는 많은 회의를 영상회의로 대체하거나 대면(對面)회의는 주초, 주말로 몰아넣는 방식도 제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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