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구호로 현혹 vs 美 숫자로 약속… ABC부터 다른 두 대선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3일 03시 00분


■한국과 미국 대선 3가지 측면 비교해보니

《사상 최악의 대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2012년 한국 대선은 미국 대선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할 수밖에 없다. 향후 5년간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호’의 운영 계획과 청사진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기는커녕 단일화 이슈와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매몰돼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ABC조차 무시되고 있는 수준이다. 지금 같은 ‘묻지 마 투표’ ‘깜깜이 선거’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전 세계에 보편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G2(미국과 중국)의 권력 교체로 인한 동북아시아 정세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마저 나온다. 한국 대선을 미국 대선과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비교 분석해 봤다.》
韓, 표 따라가다보니 복지-교육 서로 닮은꼴
美, 의보-법인세율 등 명확한 선택기준 제시


한국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은 서로 엇비슷해 유권자들에게 차별화되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현혹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보들의 얼굴을 가린 채 공약만 보면 누구 정책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수준이다.

복지와 관련해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후보 모두 △0∼5세 무상보육 △고교 의무교육 △반값 등록금을 제시했다. 세 후보가 내걸고 있는 △대입전형 단순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확대 △정년 60세 의무화 등도 내용엔 거의 차이가 없다. 당초 복지는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보수와 진보가 구분되지 않는 ‘이슈 수렴’ 현상으로 유권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다른 핵심 과제도 닮은꼴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민주화 △한국형 복지체계의 구축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이는 문, 안 후보와 별 다를 게 없다.

문 후보는 우선 과제로 △일자리 혁명으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 △사람이 먼저인 따뜻한 복지국가 △경제민주화로 함께 잘사는 세상, 안 후보는 △성장의 열매가 국민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경제민주화 실현 △국민의 일할 권리 보장 등을 꼽았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해법은 닮았다. 세 후보 모두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게 대표적이다.

반면 미국 대선 후보들은 주요 분야별로 차별화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 정책의 경우 오바마는 보험 미가입자 5000만 명의 보험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롬니는 이를 ‘오바마 케어’(오바마+메디케어의 합성어)로 규정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조세 정책과 관련해 오바마는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 부유층에 최소 30%의 세율을 적용하고 법인세 상한선도 35%에서 28%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에 롬니는 연소득 20만 달러 미만이면 자본이득세를 감면하고 법인세 상한선은 25%로 낮추겠다며 맞서고 있다.
韓, 재원자료 제출 요청에 “나중에 발표할 것”
美, GDP의 22.5% vs 20%… 예산 밝히고 설득



주요 정책의 실현을 위한 재정 마련 계획을 놓고도 한미 대선 후보들은 다른 견해와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4일 중앙선관위가 예비후보 6명의 10대 공약에 대한 입장을 공개했는데 주요 공약에 대한 재원조달 방안은 제대로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재원 소요가 가장 큰 복지 공약과 관련해 박 후보는 “포괄적인 공약이므로 추후 세부적인 공약들을 발표하고 재원소요 추계, 재원조달 계획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문 후보는 “재정개혁, 복지개혁, 조세개혁 등 3대 개혁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추상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안 후보도 “불요불급한 예산 절감 및 우선순위 조정” “조세감면 축소 및 실효세율 인상” 등 교과서 수준의 원론적 방법론만 제시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 대선 후보들은 예산 규모를 놓고 정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과 관련해 오바마는 국내총생산(GDP)의 22.5%를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겠다며 ‘큰 정부론’을 제시하는 반면 롬니는 GDP의 20%를 정부 예산으로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두 후보가 창출하겠다는 일자리 규모도 다르다. 오바마는 교육, 연구개발 등을 통해 10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반면 롬니는 에너지 자립, 중소기업 육성 등을 통해 오바마보다 200만 개 많은 120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다며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韓, 대선 15일전 1차-3일전에야 3차 토론
美, 15일전까지 3차례 TV토론 모두 마쳐


차별화된 정책 승부가 사라진 공간엔 어김없이 네거티브 공방이 똬리를 틀었다.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이슈(박근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문재인), 논문 표절 등 개인 검증 이슈(안철수) 등이 주된 메뉴다.

급기야는 박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과 관련해 여야 간에 ‘생물학적 여성’ 발언 공방까지 벌어지는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정책 대결의 중요한 장(場)인 TV 토론에 대해서는 대선 47일을 앞둔 2일까지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 합의를 못하고 있다.

빅3 후보의 출마가 모두 확정된 9월 19일 이후 세 후보가 한 자리에서 정책과 비전을 놓고 공방하는 3자 TV토론은 물론이고 개별 후보가 패널과 질의 응답하는 토론회도 지금껏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실제로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은 1, 2개월 전 세 후보 측에 토론회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어느 진영도 공식적인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중앙선관위가 주최하는 세 차례의 공식 토론회도 마지막 일정이 불과 대선 3일 전에 잡혀 있어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판단의 기회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이미 3차례에 걸쳐 진행된 미국 대선후보 간 TV토론은 분야별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져 유권자들의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22일 방송된 마지막 3차 토론은 미국에서 592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봐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메이저리그 야구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810만 명)보다 7배 이상 많았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한국 대선#미국 대선#비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