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라.” 지략서의 고전 ‘손자병법’은 전 13편에 걸쳐 초지일관 이렇게 전한다. 세월이 흘러도 ‘이기는 싸움만 하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각국이 선거의 계절을 맞은 요즘, 누가 어떤 방법으로 승자가 될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7일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올해 선거운동 전략은 요약하자면 ‘감성에 호소하라’였다. 4년 연속 1조 달러를 넘어선 재정적자와 8∼9%를 상회하는 높은 실업률은 4년을 더 바라보려던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유권자와의 ‘스킨십’에 힘을 쏟았다. 8월 ‘피플’ 등 연예전문매체들과 만나 잡담성 대화를 나누고, 뉴멕시코의 한 FM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운동할 때 비욘세 노래를 듣는다” “초능력이 있다면 모든 나라 언어를 말하고 싶다”며 특유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면모를 내세웠다.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도 허리케인 ‘샌디’ 피해 주민에게 전력투구한 위기대응 리더십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던 그의 지지율 반등에 큰 몫을 했다.
이 책은 ‘이기는 선거’를 위해 힘썼던 미국의 각종 선거캠프가 겪은 시행착오 모음집이다. 워싱턴포스트와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 유력지에서 정치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저자는 학자와 통계학자, 전략가들이 정치적인 캠페인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고안해 냈는지를 상세히 소개한다.
어느 날 ‘당신은 이번 선거에 투표하기로 약속했으니 약속을 잘 지켜주세요’라는 편지를 받는다면 어떨까.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든다면 당신은 투표소에 갈 생각이 없었거나 기존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싫증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치컨설턴트 핼 맬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나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를 이용해 100만 명에게 편지를 돌렸고, 민주당은 2010년 번번이 참패했던 콜로라도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비로소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유권자 맞춤형 선거전략, 즉 ‘마이크로 타기팅’의 시작이었다.
2008년 오바마의 ‘버스 광고 전략’은 유권자들의 개별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예로 소개된다.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경합주)로 꼽히는 오하이오에서 오바마는 버스 안 천장 부근에 줄줄이 설치된 가로 70cm, 세로 40cm 크기의 판지 광고에서 “기다리지 마세요. 먼저 투표하세요. 우리의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라며 매일 주민들과 출퇴근길을 함께했다. 개별 데이터를 분석하던 도중 유권자들이 대중교통 공간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전략이었다. 그때까지 효과가 없다고 치부됐던 버스와 지하철, 정류장 광고 전략은 캠프 최고의 성과로 기록됐다. 이렇게 사회심리학과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의 정치커뮤니케이션은 유권자의 행동을 바꾸거나 마음을 얻는 순간을 구별해 내고 있다.
“선거 운동은 유권자를 다시 사람으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제야 선거캠프가 이웃의 노크나 모르는 사람의 전화 등 개인에게 접근하는 ‘인도주의적 방식’을 택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여전히 ‘한 표’로 보는 오늘의 현실을 두고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인도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후보들에게 유권자는 여전히 목적이 아닌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하지만 ‘표심에 대한 관심’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유권자의 취향이 무엇이고, 생활패턴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를 마주하는 자세가 인도주의라면 선거가 끝난 뒤 인도주의적인 당선자는 왜 만나보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읽는 내내 ‘한국에는 역대 선거캠프의 전략을 모아둔 책이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과연 이 책은 한국 대선캠프 활동가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무엇이 됐든 부디 ‘겉핥기식 인도주의’가 이기는 선거를 위한 싸움의 기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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