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대선]<3> 하일성 야구해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7일 03시 00분


감동적인 승부는 승패를 초월한다

다른 건 몰라도 ‘승부’에 대해서는 좀 안다. 30년 넘게 야구해설가로 그라운드에서 수많은 승부를 지켜봤다. 승부도 종류가 다양하다. 화끈한 승부, 지루한 승부, 뻔한 승부, 의외의 승부, 멋진 승부, 지저분한 승부 등…. 이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감동적인’ 승부다.

감동적인 승부는 승패를 초월한다.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눈빛이 빛난다.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가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닝이 거듭돼도 지친 기색 없이 평소 능력의 200%를 발휘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관중 역시 환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2루타를 친 선수가 3루까지 내달리면서 상대 수비수를 향해 위험한 슬라이딩을 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자 양 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몰려나왔다. 응원석에선 물병이 날아들었다.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지려는 순간 부상당할 뻔한 3루수가 오히려 상대 선수의 모자를 집어 주며 어깨를 다독였다. 그 광경을 본 응원석에선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충돌 직전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머쓱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게임은 더 재밌어졌다. 이닝이 바뀌자 상대 팀도 허슬 플레이로 응수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경기가 이어졌다. 승패를 떠나 멋진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을 향해 관중석에선 원정팀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침내 전쟁 같았던 경기가 끝나면 그땐 이미 승패를 초월한 상태다.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수고했다”고 덕담을 건넨다. 이들의 표정을 지켜보며 해설을 하는 필자도 흐뭇해진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감동적인 승부가 돼야 한다. 대선후보들은 대통령이 되는 게 목표다. 상대와 싸우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동적인 승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올해 한국시리즈는 삼성의 2연패로 끝났지만 SK도 멋진 승부를 선보였다. 만약 양 팀이 이기는 데 급급해 상대에게 빈볼을 던지는 비열한 플레이를 했다면 누가 이기든 비난받았을 것이다. 팬들 역시 야구를 외면했을 것이다.

또 최근 한국 프로야구의 경기력이 저하됐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비해 한국 야구의 수준은 많이 향상됐다. 다만 야구팬의 눈높이가 훨씬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들은 국민의 높은 눈높이를 잊어선 안 된다. 5년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최대의 승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시리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중요한 승부다. 이번 대선 역시 과거처럼 상호 비방이 난무한다. 필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을 책임질 큰 승부에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치열한 경쟁은 필요하다. 그래야 관중도 후보들의 자질과 진심을 더 알게 되고 투표장에도 더 많이 나갈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지켜야 한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다. 상처를 봉합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부 아닐까. 그러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감동의 승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하일성#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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