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남성의 목소리로 부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선거 로고송. 가수 박현빈의 ‘샤방샤방’을 개사한 이 로고송은 귀에 확 꽂혔지만 지난달 28일 ‘여성 상품화’ 논란에 휘말려 가사를 바꿔야 했다. 이 로고송 논란은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온 한국사회에서 성문제에 한층 민감해진 현실을 반영했다. 이처럼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해온 역대 대통령선거 로고송을 통해 대한민국 선거사와 당대 사회상을 들여다보았다.
○ 본격적 영향력은 1997년 대선부터
대중가요를 선거운동에 효과적으로 사용한 첫 번째 사례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다. 애창곡으로 ‘베사메무초’를 꼽았던 노태우 후보는 선거운동 중 이 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전(前)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보통사람’ 이미지를 표방했던 선거전략과 맞아떨어졌다.
본격적으로 유세에 로고송이 등장한 것은 1997년 제15대 대선. 김대중 후보는 그해의 인기곡 DJ DOC의 ‘DOC와 춤을’을 ‘DJ와 춤을’로 개사해 사용했다.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를 깨고 11세 연하인 이회창 후보와 겨룬 그의 상황이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라는 가사와 맞아떨어졌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2002 월드컵 분위기를 타고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해 ‘오 필승 노무현’을 로고송으로 사용했다. 기타를 치며 민중가요 ‘상록수’도 불러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했다. 이회창 후보는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대통령 아무나 하나’로 개사해 사용했다.
○ 2007년부터 세미트로트가 대세
2007년 제17대 대선부턴 세미트로트가 대세다. 이명박 후보는 박현빈의 ‘오빠 한번 믿어봐’를 ‘명박 한번 믿어봐’로 개사해 사용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은 전체 28곡의 로고송 중 ‘국민을 사랑으로 채워줘요/박근혜는 국민 밧데리’로 개사한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등 세미트로트 곡만 10곡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의 ‘샤방샤방’에 대해 새누리당 측은 “문제가 된 가사를 빼고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의 경우 전체 19곡 중 세미트로트 곡은 장윤정의 ‘트위스트’와 박현빈의 ‘앗 뜨거’ 등 5곡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그 대신 ‘5년 동안 힘들었죠/이제 바꿔봐요’로 개사한 이문세의 ‘붉은 노을’ 등 발라드와 포크풍의 노래가 많다.
전문가들은 세미트로트의 선호를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에 개사가 쉽고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는 “선거 로고송은 마이너(단조) 코드 계열의 정통 트로트보다 밝고 경쾌한 세미트로트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2006년 트로트가수 박현빈은 ‘선거 로고송을 가장 많이 부른 가수’라는 타이틀로 한국 기네스에 등록 의뢰를 했다. 그는 2006년 5·31지방선거 당시 하루에 10시간씩 투자해 700명의 후보를 위해 직접 녹음을 했다.
아이돌 그룹의 인기곡은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없는 데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는 아이돌 소속사 측에서 로고송 사용을 꺼려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두 후보 측에서 로고송으로 쓰고자 요청을 했으나 싸이 측에서 모두 거절했다.
○ 편당 제작 비용 600만 원대
대선 로고송을 만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저작권협회에 내는 복제권 200만 원과 작곡·작사가에게 주는 400만∼500만 원을 합해 총 600만∼700만 원으로 계산된다. 선거 로고송 제작 회사는 곡당 제작비로 평균 50만 원을 받는다. 발음이 좋은 가수를 보유하는 것이 인기 제작사의 비결이다. 창엔터테인먼트 양창원 사장은 “선거 로고송 가수는 기호와 이름을 또박또박 강하게 발음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고송이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기도 한다. 2004년엔 자신의 노래가 동의 없이 선거운동에 사용된다며 가수 이정현 엄정화 김건모 윤도현이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의 이름으로 성명을 냈다. 얼마 전 양 대선후보 측 사이에 ‘저작권 승인을 받지 않았다’며 로고송 저작권료 지급 문제를 둘러싼 공방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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