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초면이 분명한데, 어리둥절하다.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머뭇거리면 그제야 상대방은 겸연쩍은지 “인상이 좋으셔서요”라며 넘어간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어본얼’)을 가진 사람들은 궁금하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뭔가가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얼굴학자, 인상(人相)연구가,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물어봤다. ‘어본얼’ 소유자에게 좋은 소식도, 궂은 소식도 있다.
중간형 얼굴 한국인의 얼굴형은 현재 인류학적으로 대략 남방계 얼굴 20%, 북방계 얼굴 6%, 그리고 나머지는 남방계와 북방계가 섞인 중간계(중간형) 얼굴로 이뤄졌다.
남방계는 네모진 얼굴에 쌍꺼풀이 있는 눈이 크며 눈썹은 진하고 길다. 약간 짧은 코에 콧방울이 뚜렷하며 입술이 두텁다. 반면 북방계는 고구마형 얼굴에 쌍꺼풀 없는 눈이 작고 눈썹은 흐리고 짧다. 긴 코에 콧방울이 흐릿하며 입술은 얇다. 남방계와 북방계가 섞인 중간계는 얼굴 각 부위를 치수로 따지면 두 얼굴형의 거의 평균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은 그래서 중간형 얼굴이에요. 이들이 중부지역에 많이 분포하니까 중부지역 얼굴이기도 하지요.” 한국인의 얼굴을 문화인류학과 뇌과학적으로 연구해온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의 말이다. 1만2000여 년 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온 남방계와 8000여 년 전부터 시베리아에서 온 북방계가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섞인 뒤부터 중간형이 점차 늘어났다.
그렇다면 중간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본얼’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굴을 기억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남방계 얼굴만을, 어떤 사람은 북방계 얼굴만을 기억한다. 중간형을 봐도 그 얼굴에서 보이는 남방계나 북방계, 어느 한쪽의 특징만을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반면 약 20%의 사람은 어떤 얼굴을 접하든 각 부위의 평균을 내서 가상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들이 평균적인 얼굴, 즉 중간형 얼굴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얼굴에 익숙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본얼’이라도 처음 만나는 10명 가운데 많아야 두세 명에게서만 “어디서 본 듯하다”는 말을 듣는다.
스파이 ‘Yes’, 연예인 ‘No’ ‘어본얼’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기억에 잘 남지는 않는다. 뇌가 이들의 얼굴을 새로운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낯설어야 뇌가 긴장을 하고 각성수준이 높아지지만 평균적 얼굴인 ‘어본얼’은 낯설지가 않다고 받아들인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는 눈에 확 들어오지 않을 만큼 특징이 없고 개성도 뚜렷하지 않다. 뭇 사람의 뇌리에 남지 않아야 할 스파이로서는 적격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할 연예인으로서는 함량 미달인 셈이다.
그늘이 있으면 양지도 있다. 한국 제1호 인상연구가인 주선희 교수(원광디지털대·골상학)는 “그건 호남(好男)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평균적인 얼굴인 ‘어본얼’은 얼굴의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귀의 높낮이가 일정한, 즉 균형이 잘 맞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매력적인 얼굴은 평균적 얼굴이라는 실험결과도 있다. 1990년 미국 심리학자 주디스 랭글루아와 로리 로그먼은 수십 명의 얼굴을 컴퓨터로 합성해 평균을 낸 얼굴 사진과, 합성에 쓰인 실제 얼굴 사진들을 비교해 보도록 했다. 그 결과 비교 실험에 참여한 대부분이 합성한 평균 얼굴 사진이 실제 얼굴들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물론 평균적 얼굴이라고 해서 모두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어본얼’과 ‘누구를 닮은 얼굴’은 구별된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는 것은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익숙한, 보편적인 얼굴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누굴 닮았다는 것은 보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특정한 사람의 인상과 거의 일치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특정인물이 누구인지 연결하지 못할 때에는 ‘누구를 닮았다’ 대신 ‘어디서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톡톡 튀지도 않지만 쉽게 물리지도 않는 얼굴인 ‘어본얼’은 성격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척 보면 사납거나 고집 세 보이지 않는, 보통의 평균적 얼굴 덕분이다. 따라서 나중에 관계가 틀어져 “쟤가 그럴 줄 몰랐는데…”라든가, “보기와 다르다”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본얼’이 많아진다? 주 교수는 최근 연예인, 특히 여배우 사이에 ‘어본얼’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성형을 해서 다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되니까 튀지를 못하잖아요.” 최근 양악수술이 유행하면서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 가면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여성이 많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런 ‘변칙적 어본얼’이 증가하는 세태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 김수신 박사(레알성형외과 원장)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용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의 보편적 기준은 대표적으로 상·중·하 안면부가 각각 ‘1:1:1’ 비율일 때다. 따라서 “양악수술을 한 사람들의 얼굴이 비슷해진다면, 그건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원래 많이 어긋났던 사람들이 좀 더 기준에 가까워지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그는 풀이한다.
‘어본얼’이라도 평생 ‘어본얼’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인지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천재 발명가이자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벽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이야기다. 악(惡)의 표상인 유다의 모델 때문에 고심하던 그는 마침내 흉악한 얼굴을 지닌 남성을 찾아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남성은 몇 년 전에 선(善)의 표상인 예수의 모델로 자신이 선택했던 바로 그였다. 인상이든, 표정이든 얼굴은 마음을 담아낸다고 한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얼굴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박근혜-문재인 모두 어본얼… 좌우대칭에 상중하 균형잡힌 얼굴 ▼
확 드러나지도 않지만 금세 물리지도 않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어본얼’)은 정치인으로서도 장점이 있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은 “익숙한 얼굴은 거부감을 작게 주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좋은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너무 개성적인 얼굴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확률이 ‘어본얼’에 비해 높다.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대체로 중간형, 즉 ‘어본얼’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다.
그렇다면 19일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자웅을 겨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얼굴형은 ‘어본얼’에 가까울까? 인상(人相)연구가 주선희 교수(원광디지털대·골상학)가 이들과 대선 가도에서 퇴진한 안철수 씨의 얼굴을, 턱을 중심으로 분석해 봤다.
‘어본얼’이 균형 있는 얼굴이라고 봤을 때 박 후보와 문 후보 그리고 안 씨 모두 ‘어본얼’이었다. 얼굴의 좌우대칭과 상중하 비율이 별 무리 없이 맞아떨어졌다.
박 후보는 여성치고는 좋은 턱을 가지고 있다. 턱이 아주 좋아서 머리를 내리면 추진력이 왕성한 투사처럼 보인다. 머리를 올려 턱을 드러내면 턱이 갸름해 보이기 때문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게 한다. 머리를 내리면 그의 턱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밀어붙이는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단,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도중 입은 자상(刺傷)으로 오른쪽 턱 밑에 상처가 있어서 인상학적으로 볼 때 얼굴을 받쳐주는 면이 약할 수 있다.
문 후보는 광대뼈가 크며 턱도 좋다. 좋은 턱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쓸수록 더 좋아진다. 평상시에 책임감을 가지고 어려움을 참아낸다든지, 인내심을 갖고 이겨내려고 이를 악물다 보면 턱 근육이 발달한다. 문 후보도 그렇게 계속적으로 턱 근육을 써왔다는 것이기 때문에 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투지가 지나칠지 모른다. 앞으로 계속 턱 근육을 써서 턱이 옆으로 더 튀어나온다면 자기 사람만 챙기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과는 같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안 씨는 셋 중에서 특히 ‘어번얼’에 더 근접한 얼굴을 갖고 있다. 단, 턱을 빼고 보면 말이다. 안 씨는 입이 들어가 합죽하다. 말할 때 보면 마치 (복화술사가 들고 다니는) 인형이 말하듯 위는 가만히 있고 밑만 움직이는 얼굴이다. 안쪽으로 약간 들어간 듯한 옥니여서 말하기보다는 자기표현을 절제하는 스타일이다. 예부터 옥니는 무섭다고 했는데, 속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중이 들어가 있으니 ‘인물’이 부족해질 수 있어 아쉽다.
주 교수는 “대통령이 될 사람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얼굴이 그전과 비교해 탄력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더 많이 웃고, 더 편안해지고, 더 기분 좋게 유세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색도 더 좋아진다. 반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속이 타기 때문에 얼굴 탄력이 떨어지고 안색도 까칠해 보인다.
주 교수는 “사람들은 결국 후보의 인상을 보고 누굴 찍을지 결정한다”며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부동층 유권자는 후보들의 막바지 인상을 보고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결국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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