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4국의 정권 교체가 마무리되면서 영토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얼어붙었던 지역 정세가 긴장 국면에서 화해 분위기로 급격히 반전되는 기류를 보이고 있다. 역사문제 등 뇌관이 많아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4개국의 새 지도자가 갈등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일본 차기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한국과의 외교 관계 복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금명간에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전 재무상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또 아베 총재는 2월 22일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정부 행사로 격상하겠다는 선거 공약도 유보하기로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의 날 정부 행사는) 정권 공약은 아니다. 종합적인 외교상황 등을 감안해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26일 총리에 취임하는 아베 총재가 정권 출범 이전부터 한국과의 외교 관계 개선에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내년 2월 25일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곧바로 한일 정상회담을 갖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도 20일 당선 축하 인사차 방문한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에게 “앞으로 새 정부와 이번에 (출범하는 일본) 내각이 잘 협력해 한일관계가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으로 냉각된 중일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9일 논평을 내고 “중국은 대화 채널을 닫고 있지 않다”고 운을 떼었다. 칭화대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류장융(劉江永) 부원장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센카쿠 국유화는 아베 총재가 결정한 게 아니다. 아베 총재가 선의를 보이면 중국도 선의로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전 주중 대사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센카쿠에 외교상 다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중국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릴 열도(북방영토)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 관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새 정권은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호로 높게 평가한다. 건설적인 대화를 할 생각이다”라며 아베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재가 조기에 러시아를 방문하는 방안을 양국이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러 관계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역사상 신뢰성이 가장 높다”며 “우리는 정치 의제의 핵심 쟁점에서 서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비슷한 시기에 한중일 3국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모두 바뀌면서 3국 관계가 종전의 긴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특히 한중관계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한국이 북한이라는 벌집을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사활을 건 목표는 안정이라고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북아 지역의 긴장 국면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현 상황이 어느 나라에도 이득이 될 게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 2, 3위인 일본과 중국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둘러싼 공동대응 필요성도 국면 전환을 떠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으려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외교 공세도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사소한 일을 계기로 영토 갈등과 과거사 문제 등의 불씨가 언제든 내셔널리즘과 국수주의에 불을 지를 수 있다”며 “각국 지도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발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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