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쇄신은 국민통합, 일자리와 경제민주화, 중산층 재건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제시한 4대 국정운영 지표 중 하나다. 순서로 보면 첫째가 국민통합이고 그 다음이 정치쇄신이다. 일자리와 경제민주화, 중산층 재건 계획이 성공하려면 국민통합과 정치쇄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박 당선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우리 정치가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혀왔다. 과연 ‘박근혜 시대’에는 분열과 대립의 정치에서 협력과 상생의 정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까. 이는 차기 정부의 성패를 가를 열쇠 가운데 하나다.
○ ‘안철수 현상’ 사라질까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공약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중단 없는 정치쇄신으로 국민의 지속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안철수 현상’이 더이상 자리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은 ‘안철수로 시작해 안철수로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야보다는 제3후보가 판을 흔든 유례없는 선거였다. 정치 불신의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여야가 경쟁하듯 ‘쇄신 공약’을 쏟아낸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쇄신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높다.
박 당선인도 공천과 정당 개혁 방안을 여럿 제시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상설화와 외부 인사로 윤리위 및 선거구획정위 구성,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등은 야당도 찬성하는 의제다. 여야가 모두 찬성하니 당장 추진될 것 같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그렇지 못했다. 쇄신마저 정쟁의 제물로 삼아온 게 정치권의 민낯이다. 당장 19대 국회 초반만 봐도 여야는 국회의원 겸직 금지, 국회의원 연금제도 폐지 등을 함께 주장하면서도 정작 따로 법안만 낼 뿐 실천으로 옮긴 게 없다. 쇄신 경쟁이 ‘대선용 립서비스’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당선인의 정치쇄신 공약 중 상당수는 국회법이나 선거법 등을 손봐야 한다. 여당의 의지와 야당의 협조가 필수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쇄신을 정쟁의 제물로 만들지 않으려면 여당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이 내놓은 ‘여야를 떠나 대탕평인사 추진’이나 ‘대통령의 정기국회 연설 정례화’ 등은 눈여겨볼 공약이다. 박 당선인이 먼저 야당 인사를 적극 등용하고 국회를 존중할 때 여야 간 무한대립의 고리를 끓을 수 있다.
○ ‘검찰 성역’ 깰 수 있을까
검찰 개혁 역시 차기 정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뇌물 검사’ ‘성(性) 검사’ 사건에 이어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대립하는 사상 초유의 검찰 수뇌부 내분 사태까지 빚어졌다. 박 당선인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검찰을 온몸으로 받아내지 못하면 법과 질서는 물론이고 국가 기강까지 함께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 당선인은 고강도 검찰 개혁안을 약속했다. 중수부 폐지,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 축소, 중요 사건에 대한 검찰시민위원회의 영장 청구 및 기소 심의 등이 그렇다. ‘견제 없는 권력’을 적극 견제하겠다는 구상들이다.
검찰에 직접 메스를 대는 방안도 내놓았다. 우선 55명에 이르는 검사장급(차관급) 이상 직급을 순차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다른 행정부처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검찰의 ‘직급 인플레’를 바로잡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높은 직급이 검찰의 오만을 불렀고,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검찰 개혁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든 검사가 부장검사로 승진하는 관행도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사의 적격검사 기간은 현재 7년에서 4년으로 단축된다.
이제 남은 것은 박 당선인의 확고한 의지다. 역대 많은 정권이 검찰 개혁보다는 공생을 택했다. 검찰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려면 박 당선인부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국회가 추천하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해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구상은 박 당선인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주요 카드다. 당선인 시절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부패방지법’ 제정을 주도하는 것도 분명한 대(對)국민 메시지가 될 수 있다.
○ 개헌, “필요하지만 글쎄…”
박 당선인은 개헌과 관련해 구체적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지난달 6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민의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해 국민적 공감대가 확보되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을 뿐이다. 박 당선인 측이 같은 달 말 동아일보에 보낸 정책검증 답변서를 보면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도 “전반 4년 임기엔 선거운동에 몰두하고 재선이 된 이후에는 국정장악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대신 박 당선인은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및 장관의 인사권 보장’과 ‘총리의 실질적 정책조정 기능 강화’ 등 대통령 분권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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