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관계자는 2일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당 차원의 백서(白書)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 표 차로 대패한 선거에 대한 당의 공식적인 반성과 분석의 기록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민주당이 2008년 5월 발간한 백서의 내용, 깊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당시 ‘새 출발을 위한 솔직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대선 백서를 펴냈지만 전체 514쪽 가운데 무려 500쪽을 선거 관련 조직 구성과 활동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대선 패배 평가 및 당 체제 혁신 방안’은 불과 11쪽뿐이었고, 그것도 부록 형식이었다. 이름만 백서지 실상은 선거자료 모음집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백서는 기약이 없다. 패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 자성(自省)이 절실할 법도 하건만 당 내부에선 “졌는데 무슨 백서냐”란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심의관 이현출 박사는 “백서는 이긴 정당보다는 진 정당에서 중요하다”며 “패자가 실패를 거울삼아 당의 좌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패배 후 2주일이 지났지만 민주당이 아직까지도 책임론을 두고 계파별로 ‘네 탓’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산 관련 부대의견을 이유로 헌정 사상 초유로 해를 넘겨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게 만든 것도 ‘왜 졌을까’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민주당이 반대한 것이 대선 패인 중 하나로 꼽히는데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 보도가 편파적이어서 선거에 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민주당의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이날 KBS MBC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야 동수로 추천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도의 공정성, 편성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방송이 편파적이었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어서 “또 남 탓이냐”란 비판이 나온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당직자 시무식 인사말과 YTN 인터뷰에서 “말로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외쳤지만 사심(私心)을 앞세웠던 것은 아닌지 (대선 패배의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며 “언론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장 인선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을 듣고 있지만 개인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도 있고, 당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말씀도 많았다. 현장에는 사심과 사욕이 득실거린다”며 “사심과 사욕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듣는 비대위원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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