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9> 감사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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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군데 외압’ 견딜 정치적 독립의지 확고해야

2011년 1월 12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1주일 앞두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출신인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평생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살아왔으며, 살고 있는 집 외에 땅 한 평 소유해 본 적이 없다”며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 후보자의 사퇴에 대해 “(정 후보자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려고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했겠느냐. 나하고 가깝다고 (감사원장을) 시키려 한 게 아니다”며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 후보자나 이 대통령 모두 낙마(落馬) 원인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적 독립성’이었다.

① “정치적 독립성이 감사원장의 생명”

한 전직 감사원 고위간부는 “정 후보자의 경우 전관예우 등에 관한 의혹도 있었지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이 감사원장이 되면 정치적 외풍(外風)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고 지적했다.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을 지낸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주요 이유도 ‘코드 인사로는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무려 6만4235개의 기관에 대해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국가의 돈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감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감사원은 ‘정권의 무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한국의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의회 소속인 미국 영국이나 독립기관인 프랑스 독일에 비해 대통령과 권력의 입김이 미칠 소지가 크다. 그만큼 독립성을 수호하려는 감사원장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감사원은 구조적으로 독립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권력형 비리에 눈을 감지 않고 부조리를 척결해 나갈 원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② 힘센 기관들의 압박을 견뎌낼 강단 필요

감사원장은 이른바 ‘힘센’ 기관들과 부딪쳐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2010년 감사원장 재직 당시) 저축은행 감사에 들어갔더니 오만 군데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외압을 이겨낼 강단이 있어야 이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가장 강단 있는 감사원장’으로 평가돼온 인물은 이회창 전 원장이다. 1993년 감사원이 군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자 군은 ‘창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이 전 원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감사원은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청와대도 봐주지 않았다. 이 전 원장은 또 700억 원의 국민 성금을 모은 뒤 흐지부지됐던 ‘평화의 댐’ 건설 사업에 대해서도 감사를 벌였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정부 관계자는 “감사원이 자료를 받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찾아가자 ‘못 들어온다. 돌아가라’며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며 “이 전 원장이 성역(聖域)이었던 청와대와 군, 안기부까지 감사하면서 감사원의 활동 영역이 크게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③ 감사 대상을 압도할 도덕성과 청렴성 갖춰야

감사원장은 ‘남의 눈에 있는 들보’뿐만 아니라 때론 ‘사소한 티끌’까지 잡아내야 하는 자리이다. 국회 동의가 있어야 임명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작은 흠도 없는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추지 못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감사원 원로들 중에는 제5, 6대 감사원장(1971년 7월∼1976년 7월)을 지낸 고 이석제 전 원장을 ‘대표적 청렴 감사원장’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전 원장은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주역 중 한 명이었는데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청렴한 자세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말년까지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18평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승헌 전 원장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감사원의 한 간부는 “한 전 원장은 선비 같은 꼿꼿함과 검소한 생활로 직원들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④ “원장 리더십 약하면 감사원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도 있다”

사정기관인 검찰 경찰의 수장은 내부 인물 중에서 기용되지만 감사원장은 감사원 출신이 맡은 적이 없다. 1963년 설립 이후 초대 이원엽 원장부터 현 양건 원장까지 16명의 감사원장 중 법조인 출신이 7명, 군 출신이 5명, 행정관료 출신이 2명, 학자 출신이 2명이다.

외부에서 온 원장이 1000여 명의 감사원 직원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감사원 직원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자칫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리더십 측면에서는 판사 출신인 김황식 총리가 감사원 내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편이다. 한 감사원 관계자는 “현 감사원 직원들에게 ‘어떤 원장을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김 총리’라고 답할 것”이라며 “김 총리는 따뜻한 리더십으로 감사원 직원들을 이끌며 조직의 화합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⑤ “비리 척결 위한 통찰력과 경험 갖춰야”

비리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그런 문제를 척결해 본 경험, 부패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사원의 운용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감사원장의 중요한 몫이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21세기 감사원의 과제”라며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감사원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아는 감사원장이라야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은 “감사원장은 실무적인 감사 기술보다는 국가의 반부패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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