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의 세월은 그의 얼굴에 거뭇거뭇한 검버섯만 남겨 놓았다. 차가운 감방에서 억울하게 보낸 7년의 시간도 그의 표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불편한 다리를 지탱해 준 지팡이를 손에 쥔 채 그는 법정에 앉아 담담히 재판장의 선고를 기다렸다. 추운 날씨 탓인지 이따금 법정 안에서 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검은 뿔테안경 너머로 비친 눈빛은 흔들림 없이 재판장을 응시했다.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 짙은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법정에 앉아 있던 그는 유신시대 대표적 저항시인인 김지하 씨(72)였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원범) 심리로 열린 재심에서 김 씨는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씨는 1970년 ‘사상계’에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상류사회 오적(五賊)’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시 ‘오적’을 발표했다. 그는 그들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 시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반공법 위반)를 쓰고 100일 동안 투옥됐다.
이후 김 씨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적 구명운동이 일어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재수감돼 6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3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학생들의 반유신체제 운동에 대해 유신정권이 ‘폭력 데모를 주동해 내란을 선동했다’라며 180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이날 재판부는 김 씨의 민청학련 사건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오적 필화사건 관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를 판단하는 대신 법정 최저 형량인 징역 1개월의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판결 확정 후 한 달 동안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아 재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법리상 한계로 인한 결정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신 헌법을 비판하고 독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아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라며 “당시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2009년부터 이어져 온 민청학련 사건 재심을 통해 김 씨까지 70여 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 씨는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다. 그동안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라며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27억 원의 선거보조금을 받고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 대해 ‘먹튀’라는 표현을 써 가며 비판을 하기도 했다. 김 씨의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원래 무죄이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도 않다”라며 “(민청학련 사건은)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미 다 잊은 과거의 일”이라고 했다.
김 씨에 대한 무죄 선고는 자신을 탄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유신시대의 뒤틀린 판결에 대한 바로잡기 작업이 진행돼 오면서, 이제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김 씨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당선인 지지를 선언하며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놓아 버리고 엄마(육영수 여사)를 따라서 너그러운 여성 정치가의 길을 가겠다는 말에 믿음이 간다”라고 하기도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에서 유신시대의 아픔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통합이 이뤄지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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