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2008년 3월 12일. 이명박 정부의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유인촌 씨(62)가 취임하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이 한마디에 문화예술계는 ‘전쟁터’가 됐다. 이후 문화부는 임기가 남은 산하기관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고, 같은 해 11월 소장품 구입 규정 위반으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출신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해임했다. 문화연대 출신의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도 ‘기금을 부적절하게 운용했다’는 이유로 해임되는 등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마치 ‘숙청’이라도 당하듯 임기 전에 자리를 떠났다. 당사자들의 반격도 거셌다. 김 위원장은 법원에서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내 2010년 2월 1일 문화예술위로 출근했다. 후임이던 오광수 위원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한 지붕 두 위원장’이란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
① 찢긴 문화예술계 상처 치유할 소통 리더십 필요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첫 문화부 장관이 갖춰야 할 최우선 덕목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꼽는다. 문화예술계 내 보수-진보 성향의 단체와 두루 소통하면서 내분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것. 문화부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비슷한 갈등 양상이 반복된 만큼 이번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의 좌우 갈등을 종식시키려면 장관이 말로만 ‘소통’을 외치기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양측을 두루 배려해야 한다고 문화계 인사들은 강조한다. 문화부에 따르면 문예진흥기금(1000억 원) 영화진흥기금(1000억 원) 등 문화예술 현장에 투입되는 지원금만 1조 원이 넘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수 혹은 진보 쪽 특정 문화예술단체가 마치 점령군처럼 이들 지원금을 독차지했고 반대편은 5년 내내 굶주려야 했다. 전택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은 “새 장관은 보수, 진보 양측의 반대가 없는 중립적 인물로 매사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② 낙하산 막는 강심장, 전문성 꿰뚫어보는 혜안 가져야
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된 1990년 이후 문화부 장관 18명 중 이어령 이화여대 교수, 감독 이창동 씨, 배우 김명곤 유인촌 씨 등을 빼면 주로 정치권 인물이 문화부 장관을 차지했다. 이런 탓에 산하기관 31개, 소속기관 13개를 거느린 문화부 장관은 총대를 메고 정권 실세의 인척이나 측근들을 기관장으로 임명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의 누나인 신선희 씨가 국립중앙극장장에 선임됐다. 당시 정은숙 국립오페라단장도 친노 인사인 문성근 씨의 형수였다. 이명박 정부 때는 산하기관에 이 대통령 대선캠프를 거친 측근이 대거 포진했다. 문화계 요직에 낙하산 인사가 넘쳐나면서 창작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권에 줄을 대기 바쁜 ‘폴리아티스트(poliartist)’가 증가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무늬만 공모제의 폐해가 가장 심한 곳이 문화부”라고 말했다.
새 문화부 장관은 전문성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요직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사를 결정하기에 앞서 문화예술 각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듣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③ 한류 열풍 지속시킬 전략 있어야
지난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새 문화부 장관은 임기 중 한류 열풍을 지속시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케이팝(K-pop)이나 한류드라마 등 문화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박준흠 서울종합예술학교 공연제작예술학부 교수는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권은 아이돌 가수 중심의 한류가 가능하지만 영미권은 아이돌보다는 색다른 장르, 즉 ‘싸이’처럼 기존 팝에 풍자와 코믹 등을 가미한 독특한 음악이 통한다”며 “문화부 장관이라면 이런 점을 감안해 국가별 맞춤 한류전략을 주요 정책 과제로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을 국가 성장동력과도 연결시켜야 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중국 내 케이팝 불법 유통 비율은 94%나 됐다. 한류 콘텐츠가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불법적으로 줄줄 새어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개별 기획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문화부가 적극 나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④ 문화산업의 기초체력 신장에도 관심 가져야
한류의 자양분이 되는 국내 풀뿌리 문화도 활성화시켜야 한다. 문화부 장관 중 상당수는 단기간에 실적을 내기 위해 산업적으로 돈이 되는 분야에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6년 사회문제가 됐던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도 문화부가 문화산업의 양적 확대 위주로 정책을 펼쳐 사행성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장관은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더라도 국내 문화예술계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 장관은 적어도 ‘예술인 복지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술인복지법은 가난한 예술인을 보호하고자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지만 예술인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많다.
현재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인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업무상 재해를 당하면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나머지 3개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은 예술인복지법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최소한 고용보험까지는 포함되도록 예술인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이용관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은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지원 규모가 작다”며 “문화부 장관은 도움이 절실한 예술인부터 우선적으로 재원을 투입하는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⑤ 관광, 체육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디자이너 돼야
문화부는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체육, 관광도 담당하는 부처다. 하지만 장관들이 문화예술에 치중하다 보니 다른 분야는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문화부 직원은 “문화예술 외의 분야는 각종 현안과 정책 아이디어를 제출해도 차관까지만 보고된 뒤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며 “새 장관은 종합적인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관광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저가 관광 만연, 숙박 인프라 부족 등 개선점이 많다. 2018년 개최되는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도 각종 관광, 체육정책이 보완돼야 한다. 임상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화는 단순히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며 “문화부 수장은 문화가 생활, 복지, 노동, 교육 등 각종 공공정책을 아우르는 중심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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