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입에 갈수록 무거운 자물쇠가 채워지고 있다. ‘보안 강박증’에 걸린 듯한 모습이다. 정부부처 업무보고가 시작된 11일에는 보고 내용에 대해 아무런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업무보고마저 ‘밀봉’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인선도 아니고 각 부처의 주요 업무현황과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업무보고 내용을 ‘기밀’에 부치는 전례 없는 행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국민의 알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정부부처의)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인수위가 부처별 업무보고에 대해 언급할 경우 불필요한 정책적 혼선을 불러온다. 이는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결과적으로 정부정책의 실행력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무보고에 대해 인수위원들이 아무런 반응도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반응이 나온 것이 없다. 겸손한 자세로 경청했다”며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인수위의 본래 기능과 역할을 벗어나는 일이다”고 답했다.
이는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업무보고가 끝나자 “교육부의 학생 선발과 학사운영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입시 관련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전문대협의회로 넘기기로 했다”며 입시 정책의 큰 틀을 공개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업무보고 뒤에는 금산분리 정책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금감위와 협의한 사실을 밝혔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업무보고 과정에서 일부 과잉 의욕을 표출하면서 빚어졌던 혼선을 의식한 듯 여러 차례 보안을 강조했다. 박 당선인이 몇몇 핵심 대선공약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가 부처발로 새어나오는 데 대해 격노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보안을 지키지 않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령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의 함구령이었다.
인수위원들이 한결같이 침묵하면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는 매일같이 기자들과 인수위원들 간 쫓고 쫓기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11일에는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유민봉 간사가 기자들의 눈을 피해 목도리로 얼굴 대부분을 감싼 채 사무실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업무보고 내용이 봉쇄되면서 인수위 주변에는 정부조직 개편 등을 둘러싸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기승을 부리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윤창중 대변인은 10일 “나는 인수위 안의 단독기자”라고 말했다. 자신이 열심히
‘취재’를 해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얘기였지만, 오직 자신의 판단과 발표에만 따르라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반발을 낳았다. ‘낮은
인수위’를 표방한 것과도 맞지 않는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윤 대변인은 그러면서 11일엔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국민행복제안센터’를 열겠다”고 밝혔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업무보고 내용도 일정 부분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취했다”며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폈다.
윤 대변인은 또
“(국민의) 당선인에 대한 건의사항에 관한 관리체계를 마련키로 했다”고 말했다. 각 부처가 무슨 내용을 보고했는지, 인수위가 어떤
입장인지는 알 수도 없게 막아놓은 상태에서 무슨 건의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었다.
이날
인수위는 외부전문가 35명을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추가 인선했다. 당초 인수위는 외부전문가 자문위원을 두지 않겠다고 밝혀 기자들은
‘자문위원과 전문위원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윤 대변인은 그냥 “다르다”는 말만 반복했다.
새로 선임된
전문위원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출신이 14명,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 14명이다. 둘 다 참여한 인사는 9명이다.
인수위원에 포함되지 못한 인사들을 챙기기 위해 추가 인선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은 원내 현안대책회의에서 “인수위의 언론통제가 3공 시절, 5공 시절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며 “박 당선인의 언론관이 심각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는 “설익은 정책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지만 정책의 공론화 과정을 국민에게 알리고 검증을 받는 것은 필요하다”며 “그래야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국민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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