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의 갑작스러운 사퇴도 전례가 없지만 사퇴 이유가 이처럼 ‘깜깜이’인 경우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외부와 연락을 끊은 최대석 전 위원은 사퇴 이유를 묻는 동아일보 기자의 e메일에 이날 오전 답장을 보내왔다.
최 전 위원은 e메일에서 ‘아직은 뭐라고 말씀드릴 처지가 아니다. 물론 개인 차원의 비리 같은 것은 아니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알리겠다’고 적었다. 최 전 위원은 전날 밤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도 ‘조금 복잡한 사정이 발생해 사임을 요청했다. 개인적인 비리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다.
e메일에서 개인 비리가 아니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일부 언론에서 최 전 위원이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사위인 점을 들어 상당한 재산 보유와 주식 거래 등이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게 아니냐고 보도한 데 대한 해명으로 보인다. 설령 개인적 문제가 있더라도 장관 후보도 아닌 상황에서 임기 두 달의 인수위원을 갑자기 사퇴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e메일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지금은 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적절한 시점이 되면 알리겠다’ ‘복잡한 사정이 발생했다’는 부분이다. 인수위가 밝힌 대로 ‘일신상의 문제’가 아닌 인수위 내부에 사정이 있었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여러 차례 강조한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따른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12일 정무분과 소관인 국가정보원의 업무보고 때 외교국방통일분과인 최 전 위원이 참석했다”며 “이날 한 방송에서 국정원 업무보고에 대북라인만 참석했다는 보도가 나갔는데 이를 발설한 사람에 대한 보안조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발설자로 최 전 위원이 지목되면서 이날 사퇴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앞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을 없애고 그 기능을 신설할 국가안보실에서 맡는다는 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최 전 위원이 발설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 전 위원이 이런 사실을 강하게 부인한 데다 이런 문제로 새 정부 대북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그의 사임을 박 당선인이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국정원 업무보고와 관련한 보안조사가 업무보고가 끝난 뒤 반나절 만에 이뤄져 사퇴까지 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북정책 기조를 둘러싼 인수위 내부 갈등설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최 전 위원이 인수위 내 강경파와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다. 최 전 위원의 학계 지인들은 “박 당선인이 공직 경험이 있는 인사들에게 많이 의존하면서 최 전 위원이 소외감을 느꼈을 수 있다. 박 당선인이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같은 설명도 박 당선인이 강경파들보다 최 전 위원과 더 오래 인연을 맺어왔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는 14일 기자들에게 “나나 윤병세 위원이 (최 전 위원과) 알력을 빚을 사람이냐”며 “(내부 갈등은) 절대 없다고 봐도 된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만약 건강상의 이유라면 왜 당장 밝히지 못하는지, 개인적 문제라면 왜 나중에 알리겠다고 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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