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낮 12시 15분경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인근의 한 식당. 인수위 관계자와 기자 4명이 막 점심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일행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오후 4시에 정부조직 개편안 관련 발표가 있다”는 인수위발의 짤막한 문자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함께 있던 인수위 관계자가 급히 인수위 핵심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확정안을 발표하는 거냐”고 물었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대답 대신 ‘휴우…’라는 긴 한숨 소리만 들렸다. 함께 있던 인수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어색하게 “뭔가 마무리가 덜 됐나 본데…”라고 말을 흐렸다.
그날 오후 4시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수위 단독기자’를 자처한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브리핑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은커녕 기자실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결국 기자회견은 두 번이나 미뤄져 오후 5시에 끝났지만, 늦어진 이유에 대해선 “발표문 수정이 있었다”는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의 짧은 설명만 있었을 뿐이다.
밀봉 인사에 업무보고 ‘노(NO) 브리핑’으로 이어진 박근혜 인수위의 보안 최우선 원칙은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인 옥동석 인천대 교수가 약 일주일 동안 인수위 인근에 따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 ‘수능 문제’ 출제하듯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제출된 지 사흘 만에 언론에 전격 공개됐다. 이 안은 최종 개편안도 아니었다. 각 부처의 세부업무내용 조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팔다리가 다 잘릴 줄 알았는데 팔 하나만 잘린 수준”이라고 다행스러워했다. 친박(친박근혜) 실세 덕분 아니냐며 구체적인 이름도 나돈다.
학계에선 옥 교수가 유명한 ‘작은 정부론자’라는 점을 들어 인수위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작은 정부론자가 내놓은 큰 정부개혁안은 아이러니며, 인수위원들은 박 당선인의 공약을 집행할 뿐 자신의 소신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주체 그룹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놓고 공무원들 사이에서 ‘미안해 개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신설되거나 개편된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의 첫 글자를 따온 말로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에 희비가 엇갈린 공무원들의 자조가 섞여 있다. 문득 소통보다 보안만 강조해 온 박근혜 인수위가 국민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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