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정치권 공약 예산 추정액, 정부-국책연구기관과 큰 차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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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새누리 ‘4대 중증질환 예산’에 과거 진료비상승률 고려 안해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재원이 얼마나 소요되며 실현 가능한지를 만든 분들이 피곤할 정도로 따지고 또 따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주재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정부 부처들은 새누리당이 추산한 공약 소요 재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연이어 내놨다. 특히 복지 부문의 주요 공약들은 새누리당과 정부나 국책연구기관의 계산이 2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았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 계산 근거조차 안 밝혀

새누리당은 ‘4대 중증질환 100% 건강보험 보장’ 공약을 위한 소요 예산을 연평균 약 1조5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4대 중증질환 관련 총 진료비는 2010년 기준으로 연간 8조4802억 원이며 이 중 6조3913억 원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했다. 여기에 법정 본인부담금 5405억 원을 제외하면 공약으로 나머지 1조5484억 원을 커버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할 경우 2017년까지 약 6조1936억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 공약을 이행하면 내년부터 4년 동안 21조8657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숫자가 다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보건사회연구원은 과거 추세를 감안해 진료비 상승률을 적용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본인부담률을 암 21.3%, 심장질환 19.9%, 뇌혈관질환 19.1%, 희귀난치성질환 11.7%로 계산한 뒤 여기에 과거의 진료비 상승률을 적용한 것. 과거 5년 동안 건강보험 진료비는 62.7%나 올랐다.

포함된 항목도 다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100% 건강보험 보장’이라는 공약을 감안해 선택진료비, 4인 이하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 항목 대부분을 보장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비급여 항목 중 어디까지 보장할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새누리당이 현재 기준으로 계산했다면 우리는 향후 인구학적인 변화, 물가상승률, 의료비 증가율, 경제성장률 등을 모두 감안한 것”이라며 “실제로 발생하는 비용을 보면 우리가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왜곡된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공약은 3차 TV 토론에서 박 당선인의 발언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구체적인 산정 방식을 밝혔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대부분의 공약에 대해 소요금액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증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 정부, 연구기관은 수수방관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금액을 가장 정확하게 추산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나 국책연구기관이라고 지적한다. 수백 가지 공약이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데다 정확한 추산을 위해서는 향후 5년 동안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4·11총선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여야가 발표한 복지공약 266개를 분석해 이를 모두 이행하려면 268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주의를 줬고 대선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국책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후보들 싸움에 괜히 끼어들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의 경우 현재 금액을 2배로 올리겠다는 부분은 같았지만 민주당은 소요 금액으로 5년간 8조 원을 제시했고, 새누리당은 14조6672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양측이 다른 상황에서 괜히 나서서 한쪽을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가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에야 공약 이행 금액을 39조3610억 원으로 추산해 발표했다.

‘정답’이 발표되지 않다 보니 일반인들은 계산이 부실해도 알아채기 힘들다. 당선인의 공약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 중인 재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새누리당에서 선거 기간에 내놓은 공약 소요 금액 추계는 너무 개략적”이라며 “종합적으로 다시 계산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 막판까지 공약 쏟아내다 날림 계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박 당선인과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열흘 남기고 공약집을 발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공약집 발표 직전까지 새로운 공약이 추가돼 소요 재정을 추산하고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선거가 코앞에 닥쳐서 ‘가계부’를 내놓다 보니 시민단체 등에서 제대로 계산이 됐는지 검증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설사 검증을 한다고 해도 관심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됐다.

이처럼 다급하게 공약집과 소요 금액을 발표하고도 두 후보는 선거일 직전까지 새로운 공약을 계속 덧붙였다. 문 전 후보는 20조 원 규모의 일자리 뉴딜과 청와대 광화문 이전을 발표했고, 박 당선인은 사병 복무기간 단축을 약속했다. 이렇게 공약집 발표 후 내놓은 공약들은 아예 ‘가계부’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장원재·홍수영·문병기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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