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도움 없이 사거리 1만 km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과 부품조달 능력을 갖췄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발사한 장거리 로켓(은하 3호)의 잔해를 조사한 군 당국이 21일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군은 지난해 12월 서해상에서 북한 장거리 로켓의 1단 추진체를 거의 통째로 건져 올린 뒤 국방과학연구소(ADD)로 옮겨 정밀 분석작업을 벌였다.
미국 로켓전문가를 포함해 민관군 전문가 50여 명이 거의 한 달간 매달린 결과 북한 장거리 로켓의 실체가 고스란히 외부 세계에 처음 공개됐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로켓의 핵심기술인 엔진의 구조와 성능은 물론이고 단(段) 분리 기술과 자세제어 장치 등 ‘특급정보’가 무더기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장거리 로켓에는 주엔진 4개와 보조엔진 4개 등 총 8개의 엔진이 사용됐다. 전체 추진력은 120t으로 추산됐다. 주엔진은 1990년대 초 북한이 개발한 노동미사일에 사용된 엔진과 같은 기종이다. 노동미사일의 엔진 4개를 하나로 묶어서 장거리 로켓의 1단 추진체로 사용한 것이다.
주엔진 사이에 장착된 4개의 보조엔진은 상하 일정 각도로 움직이면서 로켓이 예정된 궤도로 날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의 경우에도 1단 로켓의 동체 내부에 자세를 잡아주는 장치가 탑재돼 있다.
북한 로켓에 사용된 연료는 등유의 일종인 케로신에 일부 탄화수소 계열 화합물이 첨가된 혼합물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커드미사일과 노동미사일에도 같은 연료가 사용된다. 연료통과 산화제통은 부식에 견딜 수 있는 알루미늄(94%)과 마그네슘(6%)을 혼합한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AlMg6)으로 제작됐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특히 48t의 적연질산(산화제)이 들어가는 산화제통의 내부는 로켓 비행 중 산화제의 출렁거림과 소용돌이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 외부엔 카메라와 가압가스배관 덮개, 전기시스템 배관 등이 설치됐다. 국방부 정보본부 관계자는 “엔진 계통의 핵심부품 대부분은 북한이 자체 제작한 것으로 평가됐다”며 “이들 부품의 용접 상태가 균일하지 않아 수작업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도감지장치와 압력 및 일부 전자기기 센서, 전선 등 10여 개의 부품은 중국 영국 스위스 등 5개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부품엔 제조 국가명이 표기돼 있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해당 국가에서 개인도 구매할 수 있는 상용품”이라며 “북한이 해당 국가에서 직접 수입했는지, 다른 경로로 들여왔는지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거리 로켓의 핵심기술인 단 분리 기술도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 장거리 로켓의 단 분리 방식은 폭압형 외피 파단(MDF) 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MDF 방식은 로켓의 1∼3단 추진체를 연결하는 볼트 속에 화약을 넣은 뒤 발사 후 일정 고도에서 자동 폭발시켜 그 힘으로 연결 볼트를 떼어내는 방식이다.
북한은 로켓의 1단과 2단 추진체에 각각 제동(制動)모터와 가속모터를 장착해 단 분리 시 추진체가 안정적인 거리를 확보하도록 해 단 분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졌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나로호도 단 분리에 MDF 방식을 사용하지만 모터는 쓰지 않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의 함의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북한이 보유한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구체적인 성능을 파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다른 한편으론 1970년대 중반 이집트가 제공한 스커드-B 미사일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탄도미사일 개발에 처음 나섰던 북한이 30여 년 만에 ICBM을 자체 제작할 만큼 기술력을 축적했다는 실질적 위협을 확인한 셈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로 북한이 중동국가에 탄도미사일의 핵심부품과 관련 기술을 역수출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사회의 대북 미사일 관련 제재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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