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우뚝 서야 정치가 산다]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발목잡고 딴죽거는 대신 대안 제시… 민생현장 파고들겠다”

《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 패배다. 패배 이후에도 한동안 주류-비주류 간 주도권 다툼만 도드라졌다. 대선 이후가 더 한심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민주통합당 얘기다. 3월 말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민주당을 지휘하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68·5선) 앞에 놓인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문 위원장은 23일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신뢰 회복이 민주당 재건과 쇄신의 첫걸음”이라며 “언행일치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대선 패배로 또다시 야당이 됐다. 민주당,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성숙한 야당’으로 가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성장 대 분배’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걸핏하면 발목 잡고 트집 잡고 딴죽 걸어서는 안 된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민생을 파고들어야 한다. 기자들 용어로 치면 ‘야마’(핵심이란 뜻으로 언론계에서 쓰이는 일본어)는 민생, 생활, 현장이다.”

―민주당은 줄곧 ‘선명 야당’을 내세워 왔는데….

“저도 비대위원장 취임(9일) 후 선명 야당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선명 야당은 반독재 투쟁이나 강력한 대여 투쟁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실력을 갖춘, 야당다운 야당이 되자는 거다.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틀에 갇혀 꼼짝 못해서는 안 된다.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선 패인, 뭐라고 보나.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였다. 우리가 주창한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이 가져가 자기화했다. 내용은 비슷했는데 ‘어느 쪽이 더 믿음직한가’란 차원에서 박 당선인 측이 국민 신뢰를 가져갔다. 민주당이나, 문재인 전 대선후보나 모두 신뢰에서 밀렸다.”

―왜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보나.

“허…. 참…. 여러 가지다. 패했으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인데…. 그래도 꼭 얘기해야 한다면…. 신뢰에서 ‘신(信)’자가 사람 인(人)변에 말씀 언(言)이다. 신뢰의 첫 번째 단계가 언행일치(言行一致)다. 국민들이 박 당선인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우리보다는 훨씬 신뢰를 더 받았다. 우리는 불안감을 줬고, 저쪽(박 당선인 측)은 그 점을 극대화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다. 한미 FTA 반대, 제주해군기지 반대가 노무현의 노선이 아닌데 우리가 왔다 갔다 하고 헷갈리게 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민주당의 정체성이 국민에게 안 보였다. 뼈가 아프다. 언행일치를 보여줘야 한다. 개혁을 외치면서 ‘뻥’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 쇄신은 신뢰 회복에서부터 시작된다.”

―대선 전략은 어떻게 평가하나.

“대선을 사령관 없이 치른 게 뼈아프다. 배우 한 사람 내놓고 총감독이 없었다. 무슨 무슨 캠프, 무슨 무슨 위원장은 많았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처럼 총사령탑이 없었다. 대선 전에 대표(이해찬), 원내대표(박지원)가 사라진 것도 실책이다.”


―두 분의 2선 후퇴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전 후보의 요구 아니었나.

“‘지도부 붕괴’가 그들(안 전 후보 측)의 전략이었지만 우리가 수용했다는 게 문제다. 최종 판단은 우리가 하는 건데…. ‘이-박 퇴진’을 압박한 비노(비노무현)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 탓이오’란 목소리가 안 들린다. 문재인 전 후보만 해도 ‘민주당만으로는 새 정치,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당 탓을 했는데….

“시민사회가 주축이 된 ‘시민캠프’ 해단식에서 시민사회를 위로하면서 한 말인데 차기 대권에 꿈이 있다거나, 정치 9단이라면 안 했을 것이다. 전략적인 사람이라면 외국에 가서 사람들이 그리워할 때를 기다리겠지. 사람은 착하다. 문 전 후보는 새 정치에 대한 희망, 바람을 타고 대선후보가 됐다. 그 에너지를 당이 활용해야 한다. 부관참시하는 것은 손해다.”

―책임지고 사과하는 태도는 필요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주류인 친노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지 않나.

“민주당에 친노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국회의원들만 해도 지난해 4·11총선 때 모두 노무현 팔아서 당선됐지 않나. 문제는 패권주의다. 이걸 깨야 한다.”

―‘99% 국민을 위한 정당’을 골자로 한 강령은 어떻게 보나.

“전당대회에서 강령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논의할 거다. 이견이 있다면 투표를 통해서라도 끝장을 내겠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기본 노선은 중도다. 민주당은 ‘중도 개혁’을 표방해 왔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모바일투표는 도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번 전대는 지도부 선출을 위한 거지 대선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다. 일부에선 모바일투표가 민주당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하지만 문제는 공명정대다. 모바일투표가 특정 정파에 유리하다고 인식돼 있다면 문제가 있다. 전대를 앞두고 ‘당대표 뽑는 데 당원, 대의원이 목소리를 못 내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DJ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노무현 정부 때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나.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통점은 실용주의다. 두 분 다 현실의 밑바닥을 밟고 서서 사고를 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서 DJ는 ‘자유, 평등, 평화’를, 노 전 대통령은 ‘정의로운 세상’을 외쳤다. 그런데 이런 정신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노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서 ‘노무현 정신은 죽었다’고 한 적이 있다. 부끄럽다. 진짜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대위원장 재임 기간에 김대중과 노무현 정신을 살려내는 데 중점을 두겠다.”

―친노, 하면 편 가르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노무현 정신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편견에 도전한 사람이다. 극단적 사고, 편 가르기를 극복해야 한다.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민주당은 언론매체도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경향이 있는데….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적절한 때 출연해야 한다고 본다.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과거 국회에서 같이 활동할 때 박 당선인을 호평했다. 인선, 행보를 볼 때 과거 평가, 유효한가.

“태어나서 왜 백일잔치를 하나. 그만큼 첫 100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레일이 놓여지고 틀이 만들어진다. 박 당선인은 좋은 이미지도 있지만 ‘불통’ ‘독선’ ‘수첩’ 같은 반대 이미지도 있다. 100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문 위원장은 16대 국회 때 박 당선인과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활동을 함께했고,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에는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당선인과 카운터 파트로 일한 인연이 있다. 문 위원장은 당시 박 당선인에 대해 “우아하고 단아함이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다. 거기에 예쁘기까지 하다”라고 호평했다.

―노무현 정부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을 했다. 첫 대통령비서실장의 덕목을 소개한다면….

“직언(直言)이다. 특히 박 당선인은 마음을 나눌 그룹이 없어 독선이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외딴섬 공주가 되지 않도록 박 당선인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주고받고 박 당선인의 단점을 보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금슬이랄까…. 노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인선을 하면서 뾰족한 수석(水石)과 그 수석을 받치는 둥글둥글한 돌을 예로 들더라. 자기가 진취적이고 말이 많으니까 자기와 개성이 정반대인 사람을 기용한 거다. 고건 전 총리나 나나 인상이 후덕하고 안정감을 주잖나.”


―박 당선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생각나는 사람은 없는데…. 내가 말할 수도 없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의원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그들과 우리는 분명하게 다르다. 연대는 필요에 의해서 선택적으로 하는 것이고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마이너스다. 현재로서는 그들과 연대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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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김기용 기자 jin0619@donga.com
#야당#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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