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68·서울대 명예교수)은 30일 “가능할 수도 있었던 대선 승리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 정확히 검증하고, 그것과 관련된 문제를 개혁, 쇄신하는 것이 대선평가위의 할 일”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과정에선 여러 차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와의 인터뷰는 29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2시간 넘게 이어졌다.
―대선 때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 국정자문단에 몸담고 있었다. 위원장직 수락,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민주당이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총선, 대선에서 잇따라 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희망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점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 DJ를 도왔던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민주당 환골탈태의 첫 길이 엄정한 대선 평가라고 생각했다.”
―DJ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다. 무엇이 ‘DJ 정신’인가.
“소통과 포용이다. DJ는 여러 의견을 듣고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추려 과단성 있게 실천했다. DJ는 자신을 탄압했던 사람도 용서했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엔 이런 게 사라졌다. DJ가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계실 것이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당이 배제됐다. 선대위를 이끈 핵심 세력도 포용적이었는지 의문스럽다.”
―핵심 세력이라면 친노(친노무현)를 뜻하나….
“조심스럽다. 친노라는 범주를 비난받아야 할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하려 한다.”
―위원장 위촉 직후 ‘아름다운 단일화’가 실패한 원인에 대한 규명을 제쳐놓고 대선을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단일화만 성공하면 선거는 이긴다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 단일화가 안 됐다. 그 과정에서의 단견이나 실책을 고백하거나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유권자의 정치지형 분석, 기대와 불안 등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내놨어야 하는데 이 기능을 해야 할 싱크탱크도 제 역할을 못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당 대표가 원장 임면권을 갖는다. 당권파가 원장직을 전리품으로 여긴다. ‘정당 브레인을 갖추라’고 작년만 해도 45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았는데 그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4·11총선 패배 후 민주정책연구원이 패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문건을 만들었지만 문성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대외비’로 분류해 배포를 금지했다. 보고서에 담겼던 건설적인 제안들이 묵살됐고 대선에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심각한 해당(害黨) 행위다. 이것이 민주정책연구원의 현실이다.”
―최근 민주정책연구원은 안 전 후보를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했는데….
“민주당이 ‘안철수 현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진단은 옳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다는 어떤 사람의 극히 주관적인 말을 인용해 안 전 후보의 정치적 리더십을 평가한 것은 정파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원장(변재일 의원)이 의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친전을 보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원장이 돼야 한다. 연구 인력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 명실상부한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
―민생경제, 시민사회운동 등 6개 분야로 나눠 대선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당 정체성 재정립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정체성 재정립이 대선평가위의 업무가 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실질적인 생활 욕구에 다가가는 현장정치적 감각보다는 이념적 감각이 훨씬 앞서 있었다. 중원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희박했다. 이런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대선평가위가 객관성,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까….
“당파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무적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출범 1주일이 지났지만 실무지원팀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데…. 보고서나 자료를 찾고 쓸 수 있는 지원팀이 꾸려져야 하고, 당 내부의 대선 정보, 문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환골탈태를 위해선 내부적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다. 인적 청산도 일정 부분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가 결코 아니다. 당연시돼 온 체질, 관행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대선 때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요구했는데….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도출한 것인지에 많은 회의가 있다. 진영 논리, 운동권 논리로 접근했다 낭패를 본 것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운동가와 시민사회가 동격이냐, 정치화된 시민운동세력이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하는 것이냐, 의문을 가져야 한다.”
―‘99% 국민을 위한 정당’이란 강령은 어떻게 보나.
“정치적 함의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공적 정당으로서의 지적 두뇌를 매우 협애하게 만든 에피소드라고 본다. 슬로건화한 정치의 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만으로는 새정치,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했는데….
“선거 때 자신을 도운 핵심 인사들의 요구를 과감하게 뿌리쳐야 한다. 국민을 바라보고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 과오가 있었다면 깔끔하게 밝혀야 한다.”
―안 전 후보가 야권 대선후보였다면 선거 결과가 달랐을까….
“게임의 양상은 근본적으로 달랐을 것이다. 여야의 프레임 구도가 달라졌을 것이고, 중원 공략도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여권은 ‘문재인이 단일후보가 되면 친노 세력이 전면에 부상할 것’이란 전략을 구사했는데 국민에게 적지 않은 불안감을 줬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문 전 후보의 주변 세력이 ‘정치 참여 안 한다’ 같은 선언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들어갔는데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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