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낙마 후폭풍]朴당선인의 3無… 동지 직언 토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보안 강조하며 나홀로 결정… 김용준 낙마사태 불러와
“소통강화 귀 기울여야” 지적

사퇴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보고를 듣고 있다. 29일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 위원장의 계면쩍은 듯한 표정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박 당선인의 단호한 표정이 묘하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사퇴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보고를 듣고 있다. 29일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 위원장의 계면쩍은 듯한 표정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박 당선인의 단호한 표정이 묘하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박 당선인은 마중을 나온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에게 “날씨가 많이 풀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자들은 박 당선인에게 여러 질문을 쏟아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권의 초대 총리 후보로는 처음, 그것도 지명 닷새 만에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이날 박 당선인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의 사퇴가 언론에 공개된 29일 저녁 박 당선인과 통화했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당선인 주변의 공통된 얘기다. 그만큼 감정 컨트롤에 능하고 위기에 강하다. 하지만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군주형 카리스마’는 불통 이미지를 강화했다. 대선 승리 이후 첫 번째 위기를 맞은 박 당선인이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지 주목된다. 이를 위해 그에게 없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박근혜의 ‘3무(無)’

①정치적 동지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뒤 친박(친박근혜)계는 더 일찍 세(勢)를 모으지 못한 것을 패인 중 하나로 꼽았다. 김무성 전 의원은 좌장으로 나서 친박계를 관리하려 했지만 박 당선인은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 신뢰관계를 회복했지만 김 전 의원의 ‘좌절’은 누구도 박 당선인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박 당선인은 누구에게도 2인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박 당선인의 ‘배신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뒤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부분 박 당선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18년간 박 당선인은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1989년 1월부터 1993년 7월까지 박 당선인이 쓴 일기를 모은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서 첫 문장은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략) 진실하고 슬기로운 인간이란 그렇게도 귀하고 희귀한 것일까”라고 적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과 김 전 의원의 ‘좌절’은 친박계를 박 당선인과 함께 정권을 창출하고 지켜내는 정치적 동지가 아닌 당선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상하관계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차떼기와 탄핵 역풍 위기 등 온갖 정치적 고락을 함께했음에도 박 당선인에게 정국 구상을 함께 나눌 정치적 동지가 없다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 선 지금, 누구도 박 당선인을 대신해 외풍을 맞아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영삼 전 대통령 곁을 지킨 최형우 전 내무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은 대통령과 정치적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지 관계였다. 현재 여론의 질타가 모두 박 당선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정치적 동지가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②직언하는 참모

김 전 후보자 인선 과정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조차 “(발표) 30초 전에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처음부터 김 전 후보자를 단독 후보로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후보들이 고사하자 김 전 후보자를 낙점한 것인지, 김 전 후보자 낙점 이후 검증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아는 이가 없다.

▼ 朴당선인, 아버지의 ‘개방형 용인술’ 배워라 ▼

최대석 전 인수위원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대해서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선에 대해서도 억측만 무성하다. 박 당선인을 오랫동안 지킨 친박 핵심들도 “박 당선인만이 알지 않겠느냐”며 한결같이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들도 박 당선인의 ‘정보 독식’을 우려한다. 누구도 인선에 관여한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지금은 박 당선인을 돕지 않는 옛 보좌관 출신이 비선조직을 가동하고 있다는 등 온갖 괴소문이 나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직접 문제 삼는 측근은 거의 없다. 박 당선인의 한 핵심 측근은 “당선인만큼 권력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나중에 돌아보면 당선인의 선택이 옳은 적이 많았기 때문에 당장 여론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다수 주변 측근들이 박 당선인에게 직언을 하기보다 발을 빼다 보니 ‘박 당선인 혼자 허허벌판에 서 있고 나머지는 모두 수수방관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③ 토론 문화

박 당선인이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참모들의 직언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25일부터 인수위 내 분과별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매일 A4용지 10장 분량의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거기에 인수위원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은 없다. 당선인의 일방적 지시만이 죽 나열돼 있을 뿐이다.

박 당선인의 ‘보안 제일주의’는 토론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논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보안 유지가 힘든 만큼 토론보다는 일대일 면담을 선호하는 것이다. 대선 기간 과거사와 정수장학회 문제 등을 놓고 여러 참모가 “함께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지만 박 당선인은 그때마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건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은 군 출신이면서도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상대방을 설득해 동의를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다. 이는 사범학교 출신의 교사 리더십이었다”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고 전 총리가 1971년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시절 박 대통령의 지시로 ‘국토 조림(造林)’ 사업을 할 때 농림부 산하의 산림청을 내무부 산하로 옮기려 하자 농림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한마디 지시로 이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지만 농림부 장관을 오랫동안 설득했다는 것이다.

○ 박정희식 용인술 벤치마킹

박 당선인이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은 이후 보여준 일관된 용인술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박 당선인이 만난 사람들의 인상과 언행 등을 기록한 ‘인사 수첩’을 인선 때 활용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엔마초’(비망록의 일본말)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밀봉 인사’ 논란을 부른 박 당선인에 비해 개방형에 가까웠다. 박 전 대통령을 9년 2개월 동안 보좌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정치회고록’에서 “내무·법무·국방·무임소장관(현 특임장관)은 대통령이 인선하되 나머지 장관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복수 후보를 추천했다”고 전했다. 또 주미·주일·주유엔 대사는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고 기타 대사는 외무부 장관의 의견을 들었다. 청장 가운데는 국세청장이나 관세청장만 대통령이 지명했고 차관 인선은 원칙적으로 장관의 의사에 따랐다.

반면 박 당선인은 2011년 비상대책위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4·11총선 공직자추천위원, 인수위원 인선까지 철저히 ‘폐쇄형 인선’을 고수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사 추천을 받지만 검증 실무 작업은 몇몇 실무자가 극비리에 진행했다. 최종 결정은 박 당선인의 ‘나 홀로 판단’에 의존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당선인이 인선 발표 전 보안이 유지되는지를 상호 간 신뢰의 척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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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홍수영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박정희#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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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7

추천 많은 댓글

  • 2013-01-31 04:50:35

    인재의 기준이 뭔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게 인재인가? 자신의 두 아들 군대에 보내지도 않는 자가 제대로 된 애국심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물론 안 갈 수도 있었고 법적으로 옳을 수도 있지만 정말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한 명이라도 억지로라도 보냈을 것이다.

  • 2013-01-31 07:10:28

    아침 라디오 토론에서 어제 강원 한나라파 의원님들과 박당선인의 회동자리에서 청문회에서 너무 긁어데니 유능한 인물이 다 회피해서 인물모시기가 어렵다고 했다는데. 이게 말이여 된장이여. 청문회를 없에자는건지 이나라지도층에 정상인이 없다는 말밖에 않되지 않은가요

  • 2013-01-31 08:13:31

    인재라고 TV나 신문에 저마다 한마디씩 해대는 작자들...우리 동네 39통 통장보다 못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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