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인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검증에 필요한 신상조회에 동의하는 과정에 정진영 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검찰 중립성’ 확보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검찰총장 인사추천위원회가 실질적인 역할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정 수석 왜 나섰을까
여권과 헌재에 따르면 안 재판관은 지난달 초 신상조회 동의를 요구받자 거절했다고 한다. 헌재 재판관으로 간 지 4개월여 만에 자리를 옮기는 것, 더구나 최고 헌법기관이자 사법기관인 현직 재판관이 행정부처인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으로 가는 것은 3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의 취지와 배치돼 뒷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안 재판관의 임기는 2018년 9월까지다.
그러나 안 재판관이 고사하자 정 수석이 전화통화 등을 통해 안 재판관을 설득했고, 결국 안 재판관이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안 재판관은 직에 욕심을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직 민정수석이 현직 헌재 재판관에게 동의서를 내라, 마라 한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박 당선인 측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안 재판관이 각별한 관계란 점을 알고 청와대가 적극 나섰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법무부는 지난달 14일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을 마감한 직후 추천된 후보자들에게 ‘인사 검증을 해도 되느냐’고 묻는 인사 검증 동의 요청서를 발송했지만 차동민 전 대검찰청 차장(54·사법시험 22회),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53·사시 25회) 등은 이를 고사했다. 전직 검찰간부 중에서는 안 재판관이 유일하게 인사 검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안 재판관은 당초 법무부가 요청을 했을 때는 거절했다가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위원회는 거수기?
법무부는 현재 공석인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을 위해 검찰총장 후보추천위를 최초로 구성했다.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2011년 9월 개정된 검찰청법에 신설된 제34조의 2(법무부 장관이 제청할 검찰총장 후보자의 추천을 위해 법무부에 검찰총장 후보추천위를 둔다)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초 위원회 가동 직후 “위원회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적합한 인물을 추천받아 검찰총장으로 발탁하겠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정 수석이 안 재판관을 설득한 것은 검찰의 중립성 확보라는 위원회 가동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원회는 청와대 등 권력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면 위원회가 형식상의 기구란 얘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인사추천위는 3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려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장관은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대통령이 지명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형식을 준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 수석이 추천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데다, 정 수석과 권재진 법무부 장관, 정성진 인사추천위원장(전 법무부 장관)이 모두 같은 고교(경북고) 동문이란 점도 논란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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