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의 악순환… 임기제 檢총장 16명중 10명 중도하차

  • Array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정권은 지연-학연 따지고 총장은 ‘정치 검찰’ 오명
DJ 비자금 수사 유보 김태정… 정권교체뒤에도 유임 ‘보은’

역대 정권의 검찰총장 인사는 대체적으로 ‘내 식구’는 기용하고 ‘남’이면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정권이 지연, 학연으로 얽힌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그 검찰총장은 정권을 바라보며 검찰을 무리하게 지휘하다 스스로 몰락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정치 검찰’ 논란이 일었고,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됐지만 이후 임명된 16명의 총장 가운데 2년의 임기를 모두 채운 총장은 김기춘, 정구영, 김도언, 박순용, 송광수, 정상명 총장 등 6명에 불과하다. “검찰총장이 되기보다 임기를 마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김기수, 김도언 총장은 모두 김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경남 출신이었다. 특히 김기수 총장은 김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였다. 그는 1997년 8월 한보 비리 수사 중 YS의 차남 현철 씨 구속 수사와 관련해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총장직을 내놨다.

김대중(DJ)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 YS가 임명한 김태정 총장을 유임시켰다. 김 총장이 대선 직전 YS를 설득해 DJ 비자금 수사를 유보한 데 대한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DJ는 집권 2년차인 1999년엔 대구·경북(TK) 출신의 박순용 총장을 임명했지만 많은 검사들은 “실제 총장은 신승남 대검 차장”이라며 냉소했다. 신 차장은 정권의 지지 기반인 전남 출신이었다. 그러나 신 차장은 총장이 된 후 누나와 동생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낙마했고, 자신도 내사 정보 유출 혐의 등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엔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총장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3년 3월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고, 김각영 총장은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났다.

김종빈 총장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속에 검찰을 떠났다. 2005년 10월 ‘6·25는 통일전쟁’ 발언 사건으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천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며 불구속 수사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 코드 인사는 ‘최악 중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2009년 7월 지명된 천성관 총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업자로부터 각종 후원을 받은 ‘스폰서’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스스로 사퇴했다. 청와대가 검찰 조직을 일신하겠다며 전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3기수 아래인 천 후보자를 발탁하는 바람에 고검장 지검장 11명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면서 검찰 조직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수뇌부 내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말 물러난 한상대 총장은 대표적인 코드 인사의 결과로 꼽힌다. 고려대 출신인 한 총장은 현 정부에서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총장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뇌부 내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 총장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 전직 총장은 “정권이 검찰을 입맛대로 길들이려 하면 정권도 죽고 검찰도 죽는다”라고 지적했다.

길진균·조수진 기자 leon@donga.com
#임기제#검찰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