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선에 대해 “정당인이 아닌, 정치권 밖 사람으로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응원단장’으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했다. 그만큼 문 후보의 패배에 허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보수적 개혁’을 통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남북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새 정부의 임무이자 진보가 살길이라고 본다는 취지다. 그러나 그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
인터뷰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1시간 45분간 진행됐다. 조 교수는 지난해 12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선 때문에 연기한 ‘묵언안거(默言安居)’에 들어갑니다. SNS 활동 및 언론 노출 일체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조 교수의 안거 이후 첫 인터뷰였다.
동아일보는 조 교수를 시작으로 진보진영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게재한다.
―‘걱정이 된다’고 했는데….
“박 당선인이 (선거 때) 밝힌 정도의 복지 개혁을 실현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본다. 보수적 복지국가가 이뤄진 다음에 또 한 번의 새로운 논쟁과 멋진 대결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박 당선인은 보수진영에서 볼 때 혈육 같은 느낌을 준다.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보수의 아이콘이지 않나. 정통 보수라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복지개혁을 했을 때 누가 박 당선인에게 좌빨이라고 하겠나. 그러려면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총체적 능력에 대해 신뢰를 가져야 하는데 윤창중 이동흡 김용준 인선을 보면 걱정이다. 야구로 보자면 3자 삼진 아웃이다. 1번, 2번, 3번을 최정예 선수로 내보내야 하는데 함량 미달이었다.”
―박 당선인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어떤 사람의 의견을 듣고 저 세 ‘타자’를 뽑았는지 여당 의원들도, 언론도 잘 모른다. 그럼 본인(만)의 데이터베이스나 수첩, 파일이 있거나, 십수 년 된 비서진의 의견만 듣는 것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의사결정구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식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원화되고 언론자유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아버지처럼 몇십 년 할 수도 없다. 자기는 5년밖에 못 한다.”
―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위험하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는 자기 확신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실제 자신이 치른 선거를 다 이겼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도 당원 투표에서는 이겼다. 어릴 때부터 권력의 냉혹함과 생리를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권력을 잘 아는 ‘생래적 정치인’이다. 이게 역으로 ‘내가 다 알아’라고 하기 쉽다. ‘아버지나 내 앞에서 어떻게들 행동하는지, 어떻게 배신하는지 다 봤어. 어떻게 하면 발발 기는지도 알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권이 새롭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집(청와대)에 다시 간다고 생각할 것 같다.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느낌 아닐까. 결국 국정 운영을 해 보지 않았는데 해 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이 위험하다. 그 신호가 최근 세 번의 인사로 드러났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 식이라고 했다.
“잘못됐다. 자기 성찰을 안 하신 거다. 당선되기 전까지는 자기 세력을 결집하고 모든 문제를 아(我)와 타(他)로 구별한다. 아군은 결집하고 적군은 죽여야 하는 것이다. 집권할 때까지 선거는 현대의 변형된 전쟁이다. 저도 (박 당선인이 보기에) 얼마나 밉겠나. 죽여야 할 놈 리스트에 오른 것 아닌가. 조선시대 같으면 참수 대상이거나 적어도 귀양 갔다. 다행히 민주주의 사회니까…. 그러나 집권 후에는 자기방어 기제에서 자기 성찰로 바뀌어야 하는데 박 당선인처럼 승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기 성찰이 봉쇄당한다. 진짜 원했던 (대선) 승리를 한 순간 승자의 역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박 당선인은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정관정요’에 나오는 통치론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비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 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을 들여다보고 ‘충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반대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하지는 않겠다. 제 이야기를 듣겠나.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세월은 지나간다. 지금 기세라면 내년 지방선거는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로 2016년 총선을 한다? 저는 질 거라고 본다.”
―박근혜는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돼야 할까.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고 했으니 복지국가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5년 뒤 어떤 대통령으로 남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보수적 복지국가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냐, 아니면 단순히 아버지의 딸이었느냐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는 독재를 했지만 복지 측면에서 의료 개혁을 한 점은 기억된다. 아버지의 모자랐던 반쪽을 채워주려는 열망이 있을 거라고 본다. 박 당선인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5년을 망치면 ‘봐라, 이럴 줄 알았다’라든가 ‘생물학적 DNA 외에 정치적 DNA가 있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박 당선인 주변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권 창출에 누구보다 애를 썼지만 이제는 목숨 걸고, 자리 욕심 없이 직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나서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박 당선인을 옹위하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망치고 대한민국을 망친다. 당선 전에는 진보진영이 (단일화 과정에서) 잠시 내려놓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낚아채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진보가 제기한 시대정신을 받은 것이다. 시대정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민과 대중의 요구 아닌가. 적어도 담론의 차원에서는 우리나라 전체가 진보화됐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대선 때 말한 복지나 경제민주화 공약으로만 보면 메르켈처럼 보인다. 그걸 지키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보다도 못할 것 같다. 대처는 정책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했지만 측근과 고위직 인사 관리에 탁월했다. 측근이 누군지 안다면 언론이나 주변에서 감시할 수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측근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
―박 당선인의 헤어스타일을 지적했다.
“왜 그런 머리 모양을 고수할까. 자기 자신을 육영수 여사의 외양, 박 전 대통령의 정신과 일체화하기 위한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지자들도 두 사람이 겹친 모습으로 보고 있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킨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모습으로 선포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당선 전과 후에 달라져야 한다고 했는데 부차적으로 머리 모양도 바꿨으면 한다.”
―범진보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48%에 속하지만 상처가 크다. 승복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재인, 안철수, 민주당, 나 등등 다 했을 때 범진보진영의 실력이 부족해서 선거에 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제기한 복지 담론과 시대정신을 반대파가 집권한 5년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뭘 고민해야 하나.
“여야 공약의 공통분모를 확정하고 빠른 시기에, 올해 내로 즐겁게 통과해야 한다고 본다. 전체 공약을 100이라고 하면 적어도 30%는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공통공약을 처리하기 위해 진보진영과 박 당선인 정부 간에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박 당선인도 상생정치를 하려면 합의된 공통공약부터 정리하고 가야 한다.”
―박 당선인의 성공을 진보진영도 바랄까.
“진보진영에 있는 분들도 박 당선인 흠집잡기나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진보의 의제였는데 보수의 의제로 바뀐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도록 요구하고 이뤄 내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다. 동시에 새 정부가 오만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판하고 경계해야 한다. 지금 박 당선인 진영은 축제분위기일 텐데 3년 뒤에는 어떨까. 예수님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더라도 3년 뒤에는 어떨지 모를 것이다. 완벽한 대통령, 완벽한 정권, 완벽한 인간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초기 2년에 자신의 개혁성과를 합의해서 이루고 중반기부터는 그 다음 레이스로 들어가야 한다.”
―‘번짐’의 미학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도 유효한가.
“당연하다. 번져야 한다. 여당이 야당이 되고 다시 여당이 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안착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야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 그전까지는 복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알게 되면 스스로 공격의 강도와 범위를 조절하게 된다. 팩트(fact·사실) 신경 쓰지 않고 정파적 목적을 위해 공격하는 사람은 소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 정권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 교수는 그의 저서 ‘보노보 찬가’에서 장석남 시인의 시 ‘수묵정원9―번짐’(‘너는 내게로/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번짐/번져야 살지’)을 인용해 번짐의 미학이 진보진영 내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보 집권 플랜 2’를 만들 생각은….
“없다. 지난 세 번의 선거에 소요했던 기간(2년여)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어떤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고, 여의도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응원단장도 안 할 거다. 조선시대를 보면 출사했다가 왕이나 훈구파와 싸워서 안 되면 조용히 서당으로 돌아온다. 정치에서는 자기 선거를 한 사람 중심으로 가야 한다. 밖에 있는 사람을 끌어와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