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박근혜에게 말한다/릴레이 인터뷰]<3> 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민주당 의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청와대 경험 가장 큰장점이지만… 열린귀 없으면 오히려 독”

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참여연대에서 권력감시운동을 하는 동안 4개 정권의 청와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한목소리로 ‘보고 라인이 단일화되면 반드시 국정은 실패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참여연대에서 권력감시운동을 하는 동안 4개 정권의 청와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한목소리로 ‘보고 라인이 단일화되면 반드시 국정은 실패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1994년 9월 창립한 참여연대. 사법개혁운동(1995년), 소액주주운동(1997년) 등 각종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참여연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47·비례대표)이다. 28세 때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와 함께 참여연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후 18년 동안 정책실장, 사무처장, 정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1년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준비위원장, ‘혁신과 통합’ 공동대표 등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권력 감시의 최일선에 서 있었던 셈이다. 》

참여연대 시절 일 때문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4개 정부의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봤다는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당선 전 청와대를 경험한 분”이라며 “그 경험이 독단과 독선으로 흐르지 않고 개방적 태도, 열린 귀와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 당선인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4개 정부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있더라. 대통령은 반드시 복수의 의견 그룹과 복수의 보고 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의견의 편향성, 정보의 독점으로 국정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권력의 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신호 같은 것이 있다고 하던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머리는 빌려올 수 있지만 몸은 빌려올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인재 등용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YS 정부에 몸담았던 한 고위직 인사에 따르면 그런 YS조차 6개월 만에 ‘니들이 뭘 아나’라는 식의 말을 했다더라. 집권 중반기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을 계속 듣게 되고, 여기에 대한 짜증과 ‘임기 안에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이 가중되면서 점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권력의 속성인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 봤는데…’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박 당선인은 (벌써) ‘내가 가 봤더니…’란 표현을 사용하더라. 걱정된다. 박 당선인이 불러주면 얼마든지 가서 설명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과연 불러줄까….”

―박 당선인은 역대 정부를 통해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전임이 될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겠다.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 노선을 추구하면서 집권에 성공했지만 정부 출범 후엔 보수 일변도로 내달렸다. 대북관계에서도 강한 이념적 스탠스를 취했다. 대선 때는 중간으로 갔다가 대선 후엔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나타났다. 박 당선인은 2007년 당내 경선 패배 후 끊임없이 자신의 포지션을 중도로 옮기려는 노력을 했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선이 끝났다고) 다시 오른쪽으로 가려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문재인 안철수 전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 때 문 전 후보 측 협상팀원이었다. 집권에 성공했다면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 가운데 박 당선인에게 권유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참여연대에 있을 때부터 늘 하고 싶었던 일이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문 전 후보가 당선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역대 정부의 실패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별도의 팀을 구성하고 싶었다. 대통령이 되면 모두 전임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경우는 없었다. ‘YS니까 그랬을 것’, ‘김대중(DJ)은 그럴 만해’, ‘노무현이니까 어쩔 수 없지’ 같은 인상비평 수준이었다. 18년 동안 외부에서 권력을 감시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권력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권력 자체가 갖는 속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가 아닐까. 박 당선인이 분석해보면 어떨까.”

―상대 진영에서 지켜본 박 당선인의 강점을 꼽는다면….

“청와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는 것…. 대통령이 되기 전 청와대를 경험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오랫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바로 옆에서 권력을 지켜본 것은 큰 자산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경험은 가장 경계해야 할 요인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자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 ‘자기 경험의 일반화’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청와대 경험’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런 오류에 빠지면 ‘먹통 정부’가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진보세력의 오랜 의제인데 지난 대선 때는 박 당선인이 선점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데….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의 실천 여부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두 가지 분야와 관련한 여야의 공통 공약을 집권 1년차에 신속하게 실천하는 것이 성공의 첫걸음일 것이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됐던 조세감면제도 폐지, 일감 몰아주기와 하도급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대기업 총수의 배임·횡령 혐의에 대한 처벌 강화 등에 대해선 여야 이견이 없기 때문에 실천이 어렵지 않다. 민주당도 협력하지 않을 수 없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48% 국민들도 ‘진짜 하네’ 놀라면서 박 당선인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또 국민은 권력자가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을 때 감동을 받는데,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이 그것이다. 보수가 신뢰와 감동 두 가지를 갖추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박 당선인의 원래 트레이드마크인 ‘신뢰’를 더욱 부각시키고 결과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 문제로 인한 실망을 다시 기대로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보수정권은 대기업 편이란 얘기가 많다. 대기업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듯한데….

“대기업은 ‘권력은 유한해도 자본은 영원하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아마 박근혜 정부 초기 재벌들의 저항, 로비가 클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5년 내내 부자편향, 웰빙정당이란 소리를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재벌에 굴복하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김종인 전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당선 이후 재벌개혁 정책을 포기하거나 후퇴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와 성공적 차별화를 해야 한다.”

―그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명백한 실패였다. 실망스럽다. 새 정부 출범 직전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지지율이 50%대에 묶여 있고,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가는 추세다. 보수층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재택근무, ‘방콕’ 정치도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국정운영 스타일로는 적합하지 않다. 신비주의, 은둔주의는 독재자에게서 발견되는 패턴 아니냐. 그러나 늦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빨리 파악해 국정운영의 방식을 신속히 변경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정권은 시민단체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 당선인은 시민단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100% 국민행복시대’ ‘100%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을 실천에 옮기면 된다. 시민단체도 국민이니까 국민의 목소리를 듣듯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으면 된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위원회에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만 끼워 넣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복지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지금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맞춰 정부 조직을 무한정 늘려 나갈 수는 없다. 기능과 역할을 강화한 ‘제3섹터’ 즉 시민단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도 좋다. 시민단체에 지급하는 활동비가 공무원 인건비보다는 싸지 않나.”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북핵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핵을 보유했을 때와 핵을 포기했을 때의 이익과 손실을 비교해 북한으로 하여금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손실보다 크다는 점을 알게 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줘야 한다. 고립시키고 압박한다고 해서 북한이 포기하던가? 포위와 압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보여줬다.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는 외교가의 명언을 실천적으로 옮겨야 한다. 입장과 원칙은 확고히 하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은 유연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

―박 당선인은 대선 때 유연한 대북정책을 강조했다. 실천은 가능할까.

“문재인 전 후보가 대통령이 돼 북한에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면 보수진영은 이념공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실제로 유연한 입장을 취한다면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종북(從北)으로 볼까. 극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떨어져나가겠지만, 진보진영을 지지한 사람들은 모두 좋아할 것이다. 이처럼 유연한 대북정책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이 크다. 이명박 정부의 대미편향적 외교 정책은 한중관계를 악화시켰다. 유연한 대북정책은 한중관계도 복구시킬 수 있다.”

―‘박원순 맨’이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이자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엔 후보 선거전략본부장을 맡았다. 박 당선인에게 박 시장을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박 시장의 시정은 행정이 느리고 더뎌 보이더라도 소통하고 대화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이런 데서 시민들은 ‘나의 시장’이란 느낌을 갖는 것 같다. 거대한 전시행정보다는 생활 속의 작은 것을 챙기는 생활 정치를 중시하는 것도 호평을 받는다. 이런 걸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 김기식 의원 프로필

△1966년 서울 출생
△1998년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2002∼2007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4년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전략본부장
△2011년 혁신과 통합 공동대표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최은경 인턴기자 서울대 사회교육과 4학년  
#김기식#릴레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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