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박근혜에게 말한다/릴레이 인터뷰]<5> 10년간 DJ 보좌 김성재 前 문화부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8일 03시 00분


“대통합 이뤄야 국민 행복… 마음 열면 48%도 적극 도울 것”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자신감을 갖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수시로 야당 대표와 대화하면 국민 대통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미리 준비한 ‘박 당선인에게 바란다’란 A4용지 4쪽 분량의 글을 보면서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자신감을 갖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수시로 야당 대표와 대화하면 국민 대통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미리 준비한 ‘박 당선인에게 바란다’란 A4용지 4쪽 분량의 글을 보면서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65)은 1969년 6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3선(選) 출마를 위한 개헌(改憲) 반대 시위에 한국신학대학의 대표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신대 교수로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DJ와 가까워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엔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DJ가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시민대표 케이스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전격 발탁됐고,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장관을 차례로 거치며 DJ를 보좌했다. DJ가 1992년 대선 패배 후 재산(집 제외)을 환원했을 때 그 집행을 맡았고, DJ의 팔순 잔치(2004년) 때는 사회를 봤을 정도로 DJ가 생전 믿고 의지했던 측근이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기대가 크다. 튼튼한 안보를 중시하되 대북 인도적 지원과 협력 및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과정에서 DJ가 평생 강조했던 ‘국민대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높게 평가한다. 국민대통합을 실현해야 국민이 행복해지고 나라가 발전하며 스스로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좀더 자신감을 갖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수시로 야당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면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김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5일 그가 관장으로 있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의 4층 집무실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박 당선인이 대선 때는 국민대통합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엔 권위적이어서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박 당선인은 만 15년 이상 정치를 해왔다. 정무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2005년 야당(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당선인이 DJ를 방문했을 때 DJ는 ‘국민통합을 위해 잘해주기 바란다. 국민통합을 이룰 적임자’라고 덕담했다. 다만, 혼자 고심하고 씨름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열고 국민, 언론과 대화하면서 진솔하게 말할 것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을 강조해 왔기에 더더욱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48%의 국민도 박 당선인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DJ는 당선 직후 외환위기(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사태에 대해 여야 지도자들을 만나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자고 했다. 국민도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으로 화답하더라.”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DJ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인해 DJ는 도쿄 피랍 사건 등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겪었다. 그러나 DJ는 모든 것을 용서했다. 김종필(JP) 전 총리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DJP연합의 성사 조건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였는데 DJ가 대통령이 된 뒤 약속을 지키더라. 놀랍다’고 하더라. DJ는 기념관 건립에 200억 원을 배정하고 직접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DJ의 햇볕정책은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한다. 정적은 물론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 (식민통치를 한) 일본과도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요체다. DJ 퇴임 이후 이한동 전 총리가 역대 총리, 장관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도 햇볕정책의 수혜자다. 비판자였던 우리에게 국정을 수행하게 하고, DJ를 보좌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라고…. DJ는 진실로 박 당선인을 국민대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봤다.”

―당선 후 첫 100일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한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50일을 평가한다면….

“인수위는 당선인의 철학과 국가비전에 따라 국정의 방향과 기본 틀을 만드는 곳이지 완제품을 내놓는 곳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눠야 한다. 산과 숲 같은 큰 틀 대신 나무, 심지어 나무의 작은 가지 하나를 놓고 옥신각신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 핵 문제, 미중, 중-일 갈등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계적 지평 속에서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서 큰 정치를 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섬세하고 성실하고 꼼꼼한 점이 장점이지만 너무 거기에 치중하면 큰 국정을 이끌 수 없다.”

―정부 조직 개편, 정부 부처 개명 문제를 놓고도 삐걱대고 있는데….

“행정안전부와 안전행정부는 단순히 ‘안전’이란 단어를 뒤바꾼 것이 아니다. 안전을 중시하는 당선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외교부에서 통상을 떼어낸 것은 통상은 경제논리로 풀어나가야 하고, 특히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거의 100%인 우리나라의 현실, 교역이 문화, 과학기술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 등을 눈여겨본 당선인의 오랜 의정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게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외교부 장관이 ‘위헌’을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결례다. 그러나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경우에도 ‘미래 산업이 희망’이라는 확고한 비전이 담겨 있지만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공룡 부서’ 논란만 전개되고 있다. 박 당선인이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국민과 대화를 하면 풀리지 않을 일이 없을 것이다. DJ는 당선인 시절 직접 작명한 ‘문화관광부’를 내놨다가 상당한 반발에 부닥쳤다. 그때 DJ는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 미래 산업, 국가 전략산업이다’라고 한 달 가까이 설득했다. 이제는 문화관광부가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나.”

―박근혜 정부 출범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국무총리와 장관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당선인이 내세운 ‘준비된 대통령’에 부합할까.

“박 당선인은 정책은 상당히 많이 준비했다. 하지만 정책은 사람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준비가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정책이 많은데, 사람이 정해지지 않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에도 정책의 방향은 좋은 것이 많았지만 이를 수행할 사람이 뒷받침되지 않아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 같은 비판을 받았다. DJ가 당선인 시절 지명한 첫 총리는 김종필 전 총리였고, 첫 통일부 장관은 강인덕 전 장관이었다. DJP연대를 통한 연합정부의 성격도 있었지만 보수 성향 인사들이 적지 않아 당시 진보진영에선 ‘집권한 줄 알았는데 보수에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DJ는 첫 인선은 국민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박 당선인의 보완재 역할을 할 사람들이 기용됐으면 좋겠다. 당선인의 철학과 생각을 참모들에게 알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DJ 때 청와대 보좌진 490여 명을 2개 조로 나눠 1박 2일 워크숍을 했다. 아무리 생각이 좋아도 당선인 혼자서 뛸 수는 없다. 참모들이 부처, 기관에 당선인의 철학과 생각을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박 당선인에게 직언(直言)을 할 만한 참모그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

“내막은 모르지만, 박 당선인이 워낙 꼼꼼하게 숙고하는 스타일 같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소통 부재’라는 비판을 받게 되고, 이를 의식해 더 완벽한 것, 완성된 것을 추구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보좌진이 잘해야 한다. 지나치게 박 당선인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공직은 취직이 아니다. 당선인을 모시는 사람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가감 없는 직언을 해야 한다.”

―청와대는 흔히 구중궁궐로 불린다. 대통령이 되면 세상과 더 괴리되지는 않을까.

“청와대 구조를 보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장, 비서관들이 일하는 곳이 너무 떨어져 있다. 미국 백악관처럼 대통령과 참모들이 수시로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한꺼번에 청와대 구조를 뜯어고칠 수는 없다. 인적 시스템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DJ는 매주 또는 격주로 수석·비서관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처음 생겼는데, 대통령과 참모들의 대화가 훨씬 폭넓고 자유로워지더라.”

―비법조인이지만 민정수석을 지냈다. 박 당선인도 비법조인 출신 민정수석 기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옷로비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옷로비 사건은 실체가 없었다. 그러나 고교(광주고) 동문인 검찰총장(김태정)과 대통령법무비서관(무소속 박주선 의원)이 정보를 주고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청와대 참모들과 유관 기관, 부처의 수장을 같은 학교 출신이나 동향(同鄕) 출신을 써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아 형님·아우, 선배·후배 하면서 서로 덮어주기를 할 수 있고,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가 올라갈 수 있다.”

―박 당선인의 복지 정책을 평가한다면….

“좋은 정책이 많다. 다만, 복지는 자선이 아니라 인권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회평등을 지향하는 철학이 있어야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한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대선 후 민주당의 행보를 평가한다면….

“회초리 투어 같은 것보다는 지난 10년 집권 경험을 토대로 인수위와 인선 등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고 박 당선인을 바르게 견인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본다. 과거 운동권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를 향해 열린 게 진보다. 대화와 타협을 변절처럼 여겨서는 거듭날 수가 없다.”

―민주당은 대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반대했는데….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지만 FTA의 필요성은 일찌감치 DJ가 강조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로나 역량으로나 엄연히 세계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약소국, 약자란 의식에 갇혀 투쟁적, 피해의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준비된 대통령’ 같은 DJ의 캐치프레이즈를 박 당선인이 그대로 차용한 것도 매우 안타깝다.”

○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프로필

△1948년 경북 포항 출생 △1971년 한국신학대 신학과 졸업(목사)

△1979∼2007년 한국신학대 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87∼1990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대표

△1988∼1999년 한국장애인복지공동대책협의회 의장

△1990∼199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정책위원

△1993∼1999년 참여연대 중앙위원

△1999∼2001년 대통령민정수석·정책기획수석 비서관(김대중 정부)

△2002∼2003년 문화관광부 장관(김대중 정부)

△2004∼2007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상임대표

△2009년∼현재 김대중도서관 관장, 사단법인 사랑의친구들 회장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박준용 인턴기자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4학년
#김성재#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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