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이래야 성공한다]<1> 노동정책-이철수 서울대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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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이철수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노동 문제 같은 사회통합 분야는 밀실에서 훈수를 받고 정답이라 여기면 안 된다”며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한 만큼 타협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대 법대 이철수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노동 문제 같은 사회통합 분야는 밀실에서 훈수를 받고 정답이라 여기면 안 된다”며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한 만큼 타협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서울대 법대 이철수 교수는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진행해 온 한국의 자본-노동 관계는 이제 이념을 떠난 복합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복합적 처방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무대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장을 잘 아는 실무형 전문가의 등용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노동법을 전공하고 노사관계개선위원회 노사정위원회에 십몇 년간 참여하며 노사 합의와 노동 관련 법안 제정에 관여한 노동문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진보도 놀랄 만한 노동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면 성공한다. 고용 안정, 일자리 창출,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에 필수 조건이라는 시대 흐름을 읽고 공약을 잘 만들었다. 이번 대선에선 노동 문제와 관련해 여야의 차이가 없었고 갈등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그림도 안 보이는 것이 문제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인수위를 보면 노동 전문가가 없다. 1600만 노동자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박 당선인이 누구의 얘기를 듣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문제를 못 풀면 행복한 나라도 힘들고 국부 증진도 어렵다. 적어도 노동문제는 천재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밀실이 아닌 공개적 마당에서 중지를 모아야 하는데 지금은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 당선인이 보여 줄 것은 공약을 이행할 정책 의지다.”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노동계를 홀대하고 있다고 보나.

“대선 공약에서 노동 고용 복지 등을 강조했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정부 조직을 내놓아야 한다. 유럽 선거의 쟁점은 고용 복지이고, 관련 부처의 힘도 가장 세다. 인수위가 정부 조직을 짤 때 고용 복지에 힘을 더 실어줬어야 한다.”

―박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노동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를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노동위원회가 지금은 고용노동부 관리 감독을 받게 돼 있다. 노동위원회는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한데 고용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는 해결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로 보내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오래 일했는데 이 같은 사회적 합의 모델이 무용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비판은 합의한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협의하는 것 자체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 또 그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이 나중에 합의의 밑거름이 된다.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는 많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1998년 2월 6일 노사정 대타협은 사회적 협의의 대표적 모델이다. 이 같은 협의 모델을 살리려면 박 당선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실무를 잘 아는 전문가를 모으고 노사정위원회에 힘을 실어줘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대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하면….

“MB 정부는 노동 문제에 무관심 무대화로 대응했다. 노동 유연화같이 자본이 원하는 주제를 많이 다뤘고 참가한 사람도 편중됐다. 노무현 정부도 편 가르기를 했다. 주변에 민주노총 사람들을 중용했다. 노동계의 한쪽 얘기만 듣다 보니 다른 쪽의 반발을 불렀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한광옥 씨(현 인수위 산하 국민대통합위원장)가 위원장을 맡았던 1기 노사정위원회를 빼고는 보여주기 식 대화에 그쳤다.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이 노사관계개선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노동법 개정에 성공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노동문제 하면 갈등부터 떠오른다. 현재의 노동 시장 상황은 어떻게 보나.

“이 시대의 노동문제를 진영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좌우 문제가 아니다.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를 좌우 문제로 풀 수 없다는 걸 이번 대선이 보여줬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노 간 임금 차별이 심각하다. 양극화 해소와 고용 보호는 경제 활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돼 있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정책을 만들고 설득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무림의 고수를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로 인한 갈등도 크다.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비정규직 문제는 착시가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중 구조로 변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중심이 돼 온 1987년 체제가 변하고 있다. 과거엔 대기업 노조가 선도적 투쟁을 해서 그 밑의 노조들이 낙수효과를 거두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 노동자와 파견 또는 하청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 이 같은 차별을 해소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을 없애려고 하다 보면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해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래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를 할 수 있는 마당은 정부가, 즉 박 당선인이 마련해 줘야 한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문제로 갈등이 증폭됐다. 정리해고는 어떻게 보나.

“현행 정리해고법은 사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요구했지만 근로자의 권익을 잘 보호한 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정리해고 요건 4가지 중 하나인 경영상의 긴박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법 운용의 문제다. 쌍용차의 국정조사는 국회의원들이 그 문제를 판단할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다. 적절한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진중공업은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 자체야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질적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족쇄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사용자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손해배상 청구액인 158억 원이란 액수는 받아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지 않은가. 또 법적으로 손배 소송으로 인한 가압류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현대차는 사내 하청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사내 하청은 결국 고용주가 누구냐는 문제다. 이건 한 가지 기준으로 무 자르듯 재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법원의 판결은 원청회사나 하청회사 한쪽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 후유증이 크다. 입법을 통해 원청과 하청회사에 책임을 분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박 당선인이 이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개별 사업장의 문제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는 건 후진적이다. 법적인 문제는 법적으로 풀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의 새로운 질서를 짜는 데는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박 당선인이 큰 판을 짜기 위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노동문제는 결국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미 한국 시장에 단일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 협력업체나 사내 하청 근로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대기업 정규직이다. 노-노의 임금 격차가 생겨났기 때문에 같은 노동자라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말하자면 20세기 식 이념 갈등, 노사의 단선적 대립으로는 풀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럴 때 노동 문제는 진영이나 이념 논리가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경험으로 풀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이 점을 잘 파악해서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만 변할 게 아니고 재계와 노동계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사 모두 경직돼 있다. 우선 노동계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리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노동계 자체가 특정 세력만을 위해서는 안 된다. 또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정도 되면 정책을 개발할 전문연구소를 하나 갖고 있어야 한다. 노동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사회적 수용도도 높아진다. 반대로 재계의 전문가들은 회원사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하는데 전혀 바뀌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그는 아직 구상 중이지만 과연 노동조합만이 정답이냐는 점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종업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노조가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자기가 일하는 직장에서 자기의 고충을 노조가 받아 주지 못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노조 조직률도 10%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 같은 노동환경에선 종업원 이익을 대변하는 새로운 결사체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에도 노조 대신에 사업장 협의회가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박 당선인에게 노동 문제와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 문제에선 옳고 그름으로 따질 수 없고 서로의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회색지대가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 국회 노동부 노동단체 전문가 등이 같이 모여 같이 논의해야 한다. 밀실에서 몇몇의 얘기만 듣고서는 바람직한 정책을 만들 수 없다.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를 불러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 이철수 교수 프로필

△1958년 대구생
△1977년 경북고 졸업
△198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92년 서울대 법학박사
△1995년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1996년 노사관계개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2004년 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위원장
△2008년 서울대 법학부 교수
△2011년 서울대 노동법연구회장

서정보·권오혁 기자 suhchoi@donga.com
#박근혜정부#이철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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