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나 복지 공약 등은 모두 내부지향적 관점(inward-looking)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는 경제 성장의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없습니다.” 정구현 자유경제원 이사장은 12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열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기업 정책을 다룰 때 국내 이슈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 관점에서 접근해줄 것을 제언했다. 이어 인구 고령화와 과도한 복지 정책이 겹치면 우리 경제가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새 정부가 4%대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하는 저(低)성장 극복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6년간 삼성경제연구소를 이끌고 LG전선(현 LS전선), 현대건설 등의 사외이사로 활동해 실물 경제에도 정통한 국내 대표적인 경영학자이다. 》
―기업 및 경제정책 분야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풀어야 할 과제는….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사회복지 확대 세 가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은 다르다. 경제성장의 기회를 다시 찾는 것이 첫째, 사회복지제도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정착시키는 것이 둘째, 동아시아 경제협력의 틀을 완성시키는 것이 셋째다.”
―세 가지 과제를 꼭 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인구가 고령화하는 속도를 보면 2017년 이후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 것이다. 이때부터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의료비나 사회복지 비용이 급증한다. 이를 앞둔 박근혜 정부는 4%대 성장을 달성할 마지막 기회를 맞는다. 사회복지는 꼭 풀어야 할 문제이긴 한데 한 번 만든 혜택은 줄이기 어렵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훌륭한 사회복지제도, 인구 고령화, 민주주의가 ‘치명적으로’ 결합하면서 생겼다. 우리도 이 치명적 결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필요하지만 의료비 보장과 반값 등록금은 신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안보와 경제협력의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가 됐다.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성공시켜 지역의 불안요소를 없애고 번영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공약과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제를 고도화하려면 해외 시장을 기업 경쟁력 창출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인적자원과 기술역량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경제활동의 외연을 넓히는 착상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새 정부의 기업정책은 경제적 약자 보호, 기업의 과도한 권한남용 제한 등 대부분 내부지향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느낌이다. 지금까지 대기업 위주 정책을 펴왔으니 이제는 중소기업을 중시하고, 제조업 위주였으니 서비스업을 우대하고, 수출 위주였으니 내수로 바꾼다는 식의 접근은 틀린 것이다. 함께 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 분위기나 여론이 경제민주화, 대기업 규제를 지지하고 있는데….
“대기업 정책의 핵심은 지배구조다. 지배구조는 기업 내 권력관계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10∼20년 지나면 지금의 ‘재벌 체제’는 변하게 돼 있다. 시장에서 성과를 평가받을 것이고, 승계 과정에서 2세, 3세의 지분이 낮아지게 돼 있다. 사회 반대 여론의 도전도 받고 있다. 대기업도 (가족 경영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의를 의심하지만 SK그룹의 총수경영 탈피 실험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당장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주장보다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하는 박 당선인의 정책은 합리적이다. 다만 금산(金産)분리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이 낮은 금융 산업을 뒤처지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게 하려면….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자가 없으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 박근혜 정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조에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기업이 곧 재벌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업이 기를 펼 수 있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도 필요하지만 정규직 과잉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경직도 풀어야 할 문제다. 노사정(勞使政) 타협을 통해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거나 생산직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식의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규제만 늘어난다고 불평한다.
“계속 이러면 기업들은 외국으로 나간다. 이미 공장 하나를 세우더라도 구미에 세울지, 베트남 하노이에 세울지, 중국 광저우(廣州)에 세울지 고민하는 시대다. 국내에서 고(高)부가가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우리 경제가 닫힌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르면 뭔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열린 구조에서 어디로든 튈 수 있다. 양극화 문제는 달리 풀어야 한다. 독일 등 유럽 국가도 소득 격차는 상당히 높다. 잘하는 기업이 돈 많이 벌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 내수시장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내수에 기대는 기업보다 글로벌 기업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되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부가 추후에 해결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윈-윈’하는 동반성장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소기업 문제의 원인은 두 가지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 자체가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자 쪽이 더 크다고 본다. 특히 보호에 안주하는 일부 중소기업은 문제다. 영세기업과 중소기업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영세기업은 복지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생산성 낮은 자영업자는 사회안전망의 보호 속에서 재취업에 도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다. 나머지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더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성공한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을 내쫓고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책은 잘못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다. 해외로 나가 성공할 수 있는 중소기업, 중견기업을 육성한다는 명확한 정책 목표를 가져야 한다.”
―창조경제가 박근혜 정부의 중요한 화두다.
“우리나라는 이미 연구개발(R&D)에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르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런데 창조적 성과를 못 낸다. 일본처럼 폐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학, 기업, 연구소는 모두 내부에서만 연구할 뿐 개방과 협력을 게을리했다. 우리도 비슷하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R&D 예산을 나눠주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민간이 혁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지원하고, 인력을 충실히 키워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부가 ‘혁신의 주체는 철저히 민간에 맡기겠다’는 것을 모토로 삼기를 바란다. 또 한 가지, 무엇을 위한 R&D인지가 중요하다. R&D 정책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인력 양성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미 대학의 3분의 1은 제대로 된 교육을 못하는 현실인데, 반값 등록금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라 생각하나? 이런 인기영합주의 정책은 버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현 정부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명박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걸었지만 양극화가 심화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는 등 정책 여건이 좋지 않았다. 위기관리만 하다 5년을 보냈다. 평균 경제성장률이 3%에도 못 미쳤다. 고비를 넘긴 지금부터는 이보다 경제여건이 좋아질 것이다. 특히 아직 고령화 비율이 11%밖에 안 돼 성장 동력이 남아있다. 앞으로 5년은 4% 이상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새 정부의 의지를 담은 성장 목표를 제시했으면 좋겠다. 원화 가치를 낮추는 환율정책은 양극화를 부추겼다. 수출 기업엔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오히려 과도한 이윤으로 실제 경쟁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새 정부는 물가안정 만큼이나 환율 안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본 유치나 외국인 고용이 금지된 의료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익집단에 포획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결론을 못 낸다. 일본을 보면 GDP 비중이 1.5%밖에 안 되는 농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FTA 체결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갈등을 조정하고 FTA를 맺은 경험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과제 중 하나는 이익집단을 설득하고 서비스산업 규제를 풀어 서비스산업 빅뱅을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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