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 “DJ는 권노갑 시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시도했다”

  • 신동아
  • 입력 2013년 2월 8일 17시 23분


● 전라도 사람들, ‘투표하는 기계’아닌 사고하는 유권자 돼야
● 박정희 며느리는 호남 사람…박근혜는 동서화합 해야
● 이희호 여사가 문재인 지지하게 장난친 사람 누구냐?

한화갑● 1939년 전남 신안 출생(실제는 1938년생)● 목포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한국항공대, 중국 요녕대 명예박사● 14, 15, 16 17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표● 저서 :‘양심을 걸고, 운명을 걸고’
한화갑
● 1939년 전남 신안 출생(실제는 1938년생)
● 목포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한국항공대, 중국 요녕대 명예박사
● 14, 15, 16 17대 국회의원
● 새천년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표
● 저서 :‘양심을 걸고, 운명을 걸고’
18대 대통령선거 투표일 직전 ‘리틀 DJ’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TV 대담프로에 출연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언론매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라도’라는 단어를 써가며 지역감정을 거론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만든 원흉으로 거론돼왔는데, 그가 지역감정을 들먹이며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하니 시청자들은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틀 DJ’가 동교동계에서 배척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0년 그가 만든 평화민주당은 민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아 그해 6월 지방선거 때 호남에서도 한 명의 당선자를 못 내고 소멸됐다. 지난해 4월의 19대 총선에서 그는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의 집중 견제로 낙선했다. ‘흘러간 물’인 그는 세월을 돌려놓으려 지역감정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배신을 한 것인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8대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에게 92.0%(광주), 89.3%(전남), 86.3%(전북)의 표를 몰아주었다. 물론 대구(80.1%)·경북(80.8%)도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단결력은 역시 호남이 강했다. 호남 차별을 토대로 한 지역감정은 몇몇 정치인이 노력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풀려면 호남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리틀 DJ’는 ‘DJ의 복심(腹心)’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놀랍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동서화합을 한 정치인’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권노갑 고문도 참여했었다고 공개했다. 그는 진보와 손잡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격렬히 비판했다. 한국 정치계에‘미스터 쓴소리’가 되려 작심한 듯 보였다. 그를 만나 지역감정 문제와 DJ의 복심, 냉혹한 정치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당수에 몸 던진 심청이 심정


“나는 절대 문재인 지지 못해요. 박근혜는 유신의 딸이니 지원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지난 여름엔 안철수를 지지하고 다녔소, 안철수가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했거든. 정치개혁을 해야 전라도에서도 새 세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본 거요. 안철수는(지지율) 여론조사 1위였고 그의 처가가 여수이니 더욱 좋았지. 그런데 사퇴해버려 큰 고민에 빠졌소. 그럴 때 박 후보가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왔지.”

▼ 그래도 그렇지, 박정희는 김대중의 정적(政敵)이 아닌가요.

“박근혜에게도 공과(功過)는 다 있지만, 나는 그를 부정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소. 대통령의 딸로 청와대 일을 해본 데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를 누구보다도 오래 했습니다. 박 후보를 만난 후 지지할 마음이 생겨서 간접적으로 이렇게 그 대가를 요구했소.

‘대구에 가보면 대구 주위에 고속도로가 여러 개 있소. 그런데 전라도에 가보시오, 고속도로가 몇 개나 있나. 경상도엔 교통량이 많아 도로를 많이 닦았다고 하는데, 이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요. 전남에만 국토개발계획을 안 만들었소. 여수-광주, 완도-광주를 잇는 고속도로를 놓아주시오. 내 고향 신안군에는 멀리 떨어진 흑산도와 홍도를 제외한 섬 전부를 잇는 다리를 놓아주시오. 연륙교를 놓아야 할 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도 있소. 그리고 홍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주시오.

전북의 새만금사업은 계획한 대로 완성시키고 광주 문화의전당과 영암의 F1 시설은 예정된 공기 내에 마무리해주시오. 2013년 순천 국제정원박람회에는 정부 지원을 해줘야 하오. 나는 긴급조치 등으로 세 번 수감됐는데, 긴급조치로 고생한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들어 보상하시오. 그것이 아버지가 한 일을 딸이 푸는 결자해지(結者解之)요. 그렇게 하는 것이 다 박 후보의 재산이 될 것이오. 그리고 광주에 가서 한(韓)모와 이러한 것을 해주기로 약속했다고 이야기하시오. 그러면 지지하리다.’

그런데 12월 5일 광주에 간 박 후보가 ‘호남의 큰 어른이신 한화갑 대표와 이러한 것을 이야기했다’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나도 약속을 지켜야지. 다음 날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소. 인당수에 몸 던지는 심청이 심정으로 전라도 발전과 동서화합, 국민통합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이오. 2004년엔가 박근혜 대표가 동교동을 방문했을 때 DJ도 ‘박 대통령이 환생해 온 기분이다. 고맙다’ 하며 감격하셨소. DJ도 그를 동서화합 국민통합의 적임자라 하셨소.”

“政敵의 딸을 지도자로…”

▼ 박 대표가 찾아갔을 때 김 전 대통령은 혈액 투석을 하지 않았나요. 건강이 약해져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닌가요.

“투석(透析)은 청와대를 나오면서부터 했고, 그땐 정신도 올바르셨어요. 불교방송 총무국장을 한 이태호 씨가 쓴 ‘1급 비밀, 그랜드 플랜’ 54~62쪽에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권노갑 고문과 김윤환(작고) 의원을 불러 박근혜 의원을 키워보자고 한 내용이 있어요. DJ는 ‘막상 대통령이 돼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반공, 가난한 이를 위해 싸워왔는데도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이 힘들다’며 ‘내가 모든 것을 초월해서 발상의 전환을 하겠다. 최대 정적의 딸을 지도자로 길러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성의에 감격해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이 되지 않겠나. 두 사람은 그 방안을 찾아보라’라고 했습니다.

허주(김윤환)는 울산 출신의 김태호 의원(내무부 장관 역임, 작고)을 불러 DJ의 뜻을 전하며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고, 김 의원은 이태호 불교방송 국장을 불러 실무를 맡겼는데, 2001년 말 권노갑 고문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2002년 2월부터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이 계획은 사실상 폐기됐습니다. DJ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경남 함양 사람인 이태호 씨가 그 책을 썼소.”

그 책을 살펴보니, ‘2002 그랜드 플랜’은 ‘GP-프로젝트’ 혹은 특별 보안이 필요하다고 해 ‘불여묵(不如默)’으로 부른, DJ-허주-남천(김태호) 그리고 K라는 이가 추진한 김대중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였다. 이 계획대로 됐다면 16대 대통령은 박근혜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16대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지 않았다. 이 경선에서 압승한 이는 이회창 후보였는데, 본선에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 그 책에서 K로 표현된 이가 권노갑 고문이라는 것이다.

▼ DJ가 박근혜를 밀자고 한 것은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씨가 승리할 것 같으니 그를 흔들려 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 것까지는 모르지. 하여튼 DJ가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에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한 것은 분명해요.”

▼ DJ 등 세 분은 작고했지만 권노갑 고문은 정정하신데, 왜 그분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몰라. 권 고문한테 물어봐요.”

▼ 한 전 대표의 별명이 ‘리틀 DJ’였죠. 한 전 대표한테 DJ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나는 개성이 없는 사람이오. 평생을 DJ라고 하는 거울에 비춰본 후 DJ와 같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어요. 후광(後廣, DJ)이 살아계실 땐, 그와 다른 말을 하는 것은 불충으로 생각하고 살았단 말이오. 하지만 이젠 DJ도 돌아가셨으니 내 소견을 밝히고 싶소. 나도 변신하고 싶다는 말이오. DJ도 정적의 딸을 키우려 했는데, 내가 무엇을 못해보겠소? 유신 때도 아닌 지금 동서로 갈려 세상을 보는 것은 편협하다는 이야기요.”

▼ 박 당선인과 연세 차이가 어떻게 되죠. 과거에 인연이 있었나요.

“내가 박 당선인보다 열네 살 많은데,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 워싱턴에서 그와 한승수 전 주미대사, 함성득 고려대 교수와 넷이 아침을 한 것이 첫 대면이고, 12명의 의원으로 꼬마 민주당 대표를 하던 2004년 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점심을 했고, 이듬해 초 박 대표가 우리 당으로 홍어를 보내준 적이 있고, 이번이 세 번째요. 그때마다 인상이 좋았어요. 요조숙녀예요.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해냈어. 남자들도 그 앞에 가면 꼼짝 못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요.”

▼ 여자 대통령 탄생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될까요.

“정상회담을 할 때 여자 대통령, 부녀(父女) 대통령은 분명 프리미엄이 있어요. 외국 정상들도 여성 정상, 더구나 부녀 대통령은 만난 적이 없으니 주목하지. 대한민국은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오.”

▼ 박 후보와 한 전 대표를 연결시킨 이는 서청원 전 대표지요?

“그래요. 그가 자꾸 만나자고 해서 ‘내가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면 전라도에서 역적이 된다. 그러니 한화갑이 이래서 박 후보를 도왔구나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전라도 지원을 약속해달라’고 했어요.”

▼ 왜 자꾸 ‘전라도’라는 말을 씁니까. 지역감정을 의식해 서울에선 ‘호남’이라고 하지 않나요.
“무슨 소리? 전라도가 왜 나쁜 말이요? 이상하게 생각하고 안 쓰니까 그렇게 뒤에서나 쓰는 말이 되는 거요. 앞에 꺼내놓고 당당히 사용해야 좋은 쪽으로 의미가 바뀌어요.”

꼬치꼬치 따지는 기자의 질문에 부드럽게 답변하는 한화갑 전 대표(오른쪽). 그는 “동서화합이야 말로 DJ의 유훈이다. 박근혜 당선은 동서화합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free7402@donga.com
꼬치꼬치 따지는 기자의 질문에 부드럽게 답변하는 한화갑 전 대표(오른쪽). 그는 “동서화합이야 말로 DJ의 유훈이다. 박근혜 당선은 동서화합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free7402@donga.com

광주에 유감 있다

▼ 안철수 전 후보는 왜 지지했습니까.

“미국 정부 기관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에 가봐요. 청사 입구의 돌에다 국무성, 국방성, 상무성이라는 이름을 새겨놓았지. 우리는 붙였다 떼기 좋게 현판을 걸지 않소. 미국은 정부 조직과 이름은 그대로 두고 일을 바꿔나가는데, 우리는 조직과 이름을 마구 바꿔나갑니다. 기본이 바로 서지 않아서 그래요. 기본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려면 개혁을 해야 하는데, 안 후보가 하겠다고 했어요.

미국 행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드로 윌슨은 프린스턴대 총장을 지낸 학자인데 28대 미국 대통령이 돼 제1차 세계대전을 끝냈어요. 국제평화 아이디어를 만들어 우리에게는 3·1운동을 할 수 있었던 민족자결주의를 선포했고 국제연맹을 만들었소. 우리도 교수를 대통령으로 뽑는 새 출발을 해볼 수 있는 것 아니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안 후보가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했으니 지지한 것이지.”

▼ 왜 문재인 후보는 지지하지 않았나요.

“16대 대통령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그들(친노 그룹+동교동계)이 경선 자금을 이유로 나를 팽(烹)시키지 않았소. 그들은 한화갑이 전남도청을 무안으로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광주시민과 합세해 한화갑 죽이기를 했소. 나는 광주에 유감이 있어요. 광주가 전라도 정치인을 죽인 것이오. 그렇게 나를 죽인 후 전라도에 큰 정치인이 나왔나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라도 나는 문재인을 밀 수가 없어요.”

▼ 그건 친노 세력에 대한 유감이고, 문 후보에겐 개인적인 유감이 없잖습니까.

“문재인이 쓴 ‘운명’ 111쪽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인 적이 있어서 전라도 사람을 미워했다는 부분이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 인사수석을 한 정찬용 씨가 광주에 와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호남 출신을 사무관 이상으로 진급시키려고 하면 문재인이 지웠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는 전라도를 차별한 사람입니다.”

‘운명’을 다시 읽어보았다. 111쪽엔 ‘아버지는 부산의 양말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전남지역 판매상에 공급하는 일을 몇 년간 했는데, 외상만 잔뜩 쌓여 빚만 지게 되었다. 그 빚을 갚느라 오래 허덕였다. 아버지는 돈을 받을까 싶어 전표 같은 것을 오래 보관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아버지는 무너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 후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라고 적혀 있다.

▼ 정찬용 전 수석에게 직접 들었나요.

“아니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 들었소. 전해준 사람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오. 문재인도 광주에 와서 청와대에 있을 때 편향 인사를 했다며 사과하지 않았소.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라도 사람의 생각을 아는 이를 키워서 전라도가 정치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朴 지지 후 격려전화 봇물

▼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그는 내가 당 대표일 때 내가 발행해준 공천장을 들고 대통령후보로 등록해 당선되지 않았소? 그가 나를 이기고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됐을 때 나는 열심히 도와줬소. 정몽준 의원을 끝까지 설득해 노 후보 지지 유세에 끌어냈소. 그런데 팽을 시켰으니 그를 좋게 볼 까닭이 없지.”
▼ 동교동계와도 사이가 벌어졌고요.

“그들은 친노세력과 연합한 후 나를 파문했어요. 동교동 모임은 나를 부르지 않아.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 권노갑 고문과 그 주변 사람들이 신안에서 무소속으로 나온 나를 떨어뜨리는 운동을 벌였어요.”

▼ 권 고문과는 몇년 차이신가요. 두 분을 동교동계의 ‘양갑’이라고 했었는데….

“권 고문이 나보다 여덟 살 많은데 나는 그의 상대가 못돼. 그는 내가 하려는 일을 늘 방해했어. DJ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도 내가 추천하는 사람은 청와대에 가지 못하고, 그들이 미는 사람만 들어갔어. 권 고문은 DJ 정치자금을 만들었기에 그럴 힘이 있었지. 내가 DJ 대통령을 만나 무엇을 하겠다 보고하면, 그 이야기가 밖으로 알려져 막혀버리는 거야. 나는 정말 설움 많이 받았소.”

▼ 왜 그런 처지가 됐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포용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돈을 만들지 않았으니 내 사람을 만들 수 없었소. 나는 늘 혼자 갔소. 그래도 대의원 표로만 경쟁하는 두 번의 전당대회에서 전부 1등을 하지 않았소.”

▼ 박근혜 후보 지지를 밝히기 전에 권노갑 고문을 만나지 않았나요.

“한광옥이 박근혜를 지지하고 이어서 내가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니 문재인이 권 고문에게 도움을 청했겠지. 권 고문을 만났을 땐 박 후보 지지 요청을 거절했다고 그랬소. 그런데 나중에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는 것이 보도되자 동교동이 난리가 났어.

내가 움직인다고 하니 민주당에 있는 경상도 세력들이 들썩했소. 나, 박 후보 지지 밝히고 정말 전화 많이 받았소. 부산에 있는 호남향우회 사람들은 ‘한 대표가 훌륭한 결정 내렸다. 이제 우리도 부산에서 어깨 펴고 살 수 있게 됐다’는 전화를 걸어왔어요. 전라도에서도 뜻있는 분들은 역사적인 일을 했다고 격려합디다. 서울에 사는 한 고교 동기는 ‘내가 한 대표 때문에 사람들한테 대접받았어’라고 했어요.

경주 최 부잣집이 1997년 DJ 지지하며 새천년민주당에 들어왔었소. 그는 한번 정하면 평생 가는 사람이오. 그는 내가 박근혜 지지하는 방송을 보고 울었다고 했소. 물론 한광옥이 갔으니 나는 새누리당 가면 안 된다고 하는 향우회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말에는 공감했어요.”

▼ 이런 이야기를 하고 호남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문재인이 이끈 친노 세력이 호남 사람들이요? 오히려 호남을 괄시한 사람들 아니요? 열녀 불경이부(不更二夫)라고 전라도 사람들은 한번 밀면 끝까지 밀어주는 관성이 있어서 그들을 90% 넘게 밀어준 것뿐이요. 지금은 한화갑을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라도 사람들은 내 충정을 이해할 것이오.”

전라도는 朴 아닌 MB 심판한 것

▼ 하지만 호남에서 박 후보 지지율은 10%에 불과했어요.

“내가 민 이는 전남에서 10%도 못 얻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됐소. 반대로 전라도 출신이 아니고 전라도를 차별한 사람을, 전라도 사람들은 92%까지 밀어줬지만 그는 떨어지지 않았소? 그러니 전라도가 매번 소외되는 것이오. 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도 했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손녀사위가 광주고를 나왔다(박 전 대통령은 두 번 결혼했다. 이혼한 첫 부인에게서 낳은 딸이 박재옥 씨인데, 그는 한병기 씨와 결혼해 딸 한○○ 씨를 낳았다. 한○○ 씨의 남편인 박○○ 씨는 광주고를 졸업한 기업인이다). 박 대통령 친손자를 낳아 고령 박씨 가문을 이어준 박지만 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전북 익산 사람이오. 박 후보가 그렇게 사랑하는 조카를 낳아준 올케가 익산 사람이고, 이질녀 사위도 광주 사람이니 전라도에 잘 해줘야지요. 동서화합을 위해서라도 지역차별은 없어져야 합니다.’

나는 한국(韓)에서 화합(和)하는 데 갑종(甲)인 사람이오. 내 이름으로 3행시를 지으면 ‘한’마음으로 ‘화’합해 ‘갑’시다가 됩니다. 나는 동교동에 있을 때도 경상도 사람을 만나 DJ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다 보냈소.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영세명을 받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스님들을 만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대명(大明)이라는 법명도 받았고. 그렇게 우리는 화합해야 합니다.”

▼ 왜 호남 차별이 생겨났다고 봅니까.

“고려 때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전라도 쪽 사람은 쓰지 말라고 해, 우리는 피해의식이 있어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등용을 해주지 않으니 정여립의 난도 일으키고 동학란도 일으키고 5·18도 한 것 아니겠소. 빈익빈부익부를 만들어놓고 공정하게 한다고 하니 전라도는 반발하는 것이오. 전라도 사람도 아닌 노무현-문재인한테 몰표까지 주면서.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 표가 적게 나온 것은 박 당선인을 거부한 게 아니라 전라도를 차별한 MB를 심판한 것이오. 나는 박 후보에게 ‘경상도 분들은 약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시오. 그게 다 덕이 됩니다. 경상도 분들은 전라도에 대한 우월의식을 버리시오’라고 했어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경북·대구에서 18~19%를 받았는데, 거꾸로 전라도 사람이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였다면 경상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지지했겠어요? 어림없지.”

나는 돈 만들 줄 몰라

▼ 박근혜 정부가 호남 인사 예우 차원에서, 실권은 없지만 직급은 높은 민주평통 부의장 같은 명예직을 준다면 받겠습니까.

“한광옥 씨는 새누리당에 입당했지만 나는 안 한 이유가 있어요. 나는 박 후보한테 지지선언은 하지만 선거운동은 못해준다고 했어요. 국민통합을 위해 지지해주는 것이니까. 내가 정치적으로 무슨 자리를 맡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정치를 하지 않아도 베푸는 일을 할 기회는 있을 거니까.”

▼ 동교동계에서 ‘팽’당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봐요.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정치인이 사람을 쓸 때는 필요해서 쓰는 것이지, 그를 키워주려고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DJ 대통령을 모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오.”

▼ DJ가 그랬다는 말씀인가요.

“모든 지도자가 다 그래요. 그것이 인지상정이오. 그것을 알고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나는 무조건 충성하려고 한 사람이었지만 말이오….”

▼ 박정희, 전두환은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챙겨주지 않았나요. 편지를 쓰거나 전별금을 주면서. 그래서 권좌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그들을 따르는 인맥이 있었고요.

“그들 정권은 평생 간다고 봤으니 그랬겠지. 독재시대였으니까 돈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만들어 썼겠지. 민주사회의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재벌 회장들이나 그렇게 할 수 있지.”

▼ 권노갑 고문이 동교동계를 계속 이끈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DJ가 어려울 때 참여해서 오랫동안 모셨어요, 정치자금도 많이 모아드렸고. 그렇게 한 이는 내치기 어려워요.”

▼ 한 전 대표도 정치자금을 만들어드리지 그랬어요.

“유신 때 DJ가 얼마나 어려웠소. 그때 ‘주변 사람을 만나봐’ 하면, 나도 나가서 사람을 만나보았지. 그런데 박정희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DJ께 ‘선생님, 다들 어렵다고 하네요’만 했어요. 나는 돈을 만들 줄 몰라. 나중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DJ가 돈 심부름을 시키면 권노갑을 시키지 왜 한화갑이를 시키겠어’ 하더구먼. 내가 떼어먹는다고 본 것이 아닌가 싶어.”

▼ 동교동계는 한 전 대표 대신 박지원 전 대표를 선택했는데.

“그렇게 됐지.”

▼ 이희호 여사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압니다.

“그랬지요. 권양숙 여사는 문재인 지지운동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이희호 여사만 3남 홍걸이를 내세워 문재인을 지지했소. 그것이 다 누구의 장난이겠는가….”

▼ 김대중 정부 때 왜 장관 같은 공직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아쉽지 않습니까.

“아쉽지. 우리 같은 가신들은 공직에 가지 않는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소.”

민주당은 진보와 결별하라

▼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고향(전남 신안)에 다녀왔습니까.

“안 갔소. 내가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자 고향에서 노동자 7명이 한화갑이를 죽이러 간다고 했다는 전화가 걸려왔었소. 그래도 신안에서는 박근혜 지지표가 11%가 나왔어요.”

▼ 선거 후 박 당선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나요.

“없었소. 서청원 전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기에 ‘공약을 잘 지켜주시오’라고 했지요.”

▼ 김경재 전 의원은 해양수산부를 호남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던데.

“그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 공약에 담겨 있는 대로 될 거요(박 당선인은 부산에 두겠다고 공약했다).”

▼ 대선 직전 TV에 나가 박 후보를 지지한 것은 서청원 전 대표가 권해서였나요.

“그런 면도 있지만, 새누리당에서 방송사 측에 나를 접촉해보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방송사에서 바로 출연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와서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투표하는 기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고(思考)를 하는 유권자가 되어야지.”

▼ 민주당은 진보와 손을 잡았는데 한 전 대표는 보수 쪽인 것 같습니다.

“나는 중도보수를 걸어온 것 같아요. 이번 대선은 보수의 승리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보와 손 잡은 것은 큰 실수요. 민주당은 진보가 될 수가 없어요. 진보와 손을 끊고 정체성 확립 등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할 거요.”

한 전 대표와의 인터뷰는 몰입이 돼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됐다. 그의 전라도 사투리는 아주 구수했다. 그를 바라보니 가수 태진아 씨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기에 그는 날카로운 문제인 지역감정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코 능자(能者)가 아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넷. 공자도 일흔이 넘으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했다. 그는 거리끼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되는 ‘젊은 원로’다 18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지역감정을 놓아버렸으면 한다. 이 문제는, 한 전 대표처럼 패기 있고 편안한 ‘젊은 원로’들이 풀어주는 게 어떨까.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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