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내정자는 2007년 대선 경선, 지난해 총선, 대선, 당선 이후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까지 한결같이 박 당선인 측근에서 일한 유일한 인사다. 그만큼 그를 향한 박 당선인의 신뢰는 ‘무한’에 가깝다.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복심’인 이 내정자의 무게감은 수석 9명 중 한 명 이상이라는 게 중론이다.
○ ‘거위의 꿈’ 이룬 호남 비주류 당료 출신
이 내정자는 스스로를 ‘비주류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남 곡성의 ‘깡촌’ 출신이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민주정의당 당직자를 지냈다. 이후 한나라당 당직자의 길을 걸었지만 영남 출신이 주축인 당에서 그는 늘 변방이었다.
박 당선인과 만나면서 정치인생이 달라졌다. 2004년 당선인이 당 대표 시절 수석부대변인이던 이 내정자의 호남에 대한 열정과 정세분석 능력을 인상 깊게 본 뒤 가까워졌다.
그는 2004년부터 9년간 당선인의 공보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2008년부터 박 당선인이 당내 비주류로 힘들었던 시절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한 그는 박 당선인의 ‘대변인 격’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내정자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2007년 대선 경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이 내정자는 “박 당선인의 원칙·정도·신뢰 정치를 통해 나라 선진화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e메일 주소로 ‘근혜빅토리2007’을 쓰다가 경선 실패 후 ‘근혜빅토리2012’로 바꿀 정도로 박 당선인을 향한 충성심이 맹목적이다.
비주류 인생의 출발점이 됐지만 이제 그의 가장 큰 자산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1995년, 2004년, 2008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광주에서 세 차례나 선거에 출마했다. 지난해 총선 때 39.7%의 높은 득표율을 얻기도 했다.
○ 의회주의자? 제2의 경호실장?
이 내정자는 신임 수석 9명 중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리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을 지낸 그는 역대 정무수석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이 내정자가 ‘왕수석’ ‘국정의 막후 조정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건 당선인의 무한 신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9월 대선 지지율이 하락하고 공보 분야에 문제가 지적되자 4·11총선 낙선 이후 잠시 쉬고 있던 이 내정자를 공보단장으로 긴급 투입했다.
당선 이후에는 당선인 정무팀장을 맡아 인선 작업, 당과 언론 소통 창구 등을 담당하며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이번 청와대와 내각 인선을 보면 당선인의 국정운영 철학과 스타일을 그만큼 잘 아는 인사가 없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정무수석실이 이명박 정부의 시민사회수석실 기능을 대부분 통합하면서 역할 자체도 커졌다.
그러나 이 내정자의 앞길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발등의 불이다. 그의 정무수석 내정 이후 민주당은 “제2의 경호실장이 될까 우려스럽다”는 가시 박힌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올해 정부가 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려 했을 때 반대하고 상임위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정부에 호통 친 적이 많았다”며 “정치 인생 전부를 국회에서 보낸 의회주의자”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집사광익(集思廣益)이라는 말처럼 겸손하게 많은 의견과 지혜를 모으면 더 큰 이익을 구할 수 있다”며 “정무수석은 소통수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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