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의 복지 구상은 좋은 정책이라기보다 좋은 공약에 가깝다. 증세 없이 공약 실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5년 임기가 끝난 후에는 복지 재원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미래에도 칭송받을 대통령이 되려면 5년을 넘어 50년 후에도 지속가능한 복지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52·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18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개인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표 복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김 교수는 박근혜표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복지 확대도 중요하지만 현 복지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개혁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을 총평하면….
“야권의 보편적 복지와 각을 세우면서도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난다. 이미지 메이킹이 잘됐다는 얘기다. 성장에 방점을 찍었던 MB(이명박) 정부와 달리 경제 정책의 목표를 ‘국민행복’에 두면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다. 야권처럼 ‘선심성 복지’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보수층의 비판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세부 내용을 살펴봐도 그런가.
“야권의 무상 복지에 비해 상당히 정제됐다. 박 당선인이 복지 공약에서 거론한 보장 범위는 실제 크지 않다. 그러나 국민은 범위가 상당히 크다고 느낀다. 이미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이다. 복지 욕구를 적절한 선에서 통제하는 데도 성공했다. 특히 야권의 무상의료 공약을 ‘4대 중증질환 100% 보상’ 공약으로 잘 받아쳤다. 수만 가지 질환 중 4개 질환군만 보장한다는 이야기인데도 국민은 굉장히 큰 복지처럼 느낀다. 이런 감성적인 터치가 국민을 설득했다.”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국민은 공짜복지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더 내 복지를 확대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복지는 국민이 부담할 의사가 있는 수준까지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선인은 5년 내에는 증세를 안 하고 세출 조절,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5년 동안은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5년 뒤에는 증세 없이 버티기 어렵다. 4대강처럼 토목 사업은 한 번만 재원을 투입하면 되지만 복지는 매년 돈이 투입돼야 한다.”
―증세를 해야 하나, 복지를 축소해야 하나.
“박 당선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에는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면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국민이 ‘스톱’이라고 하면 멈춰야 하며, ‘고’ 하면 가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모든 공약을 국민으로부터 승인받은 것도 아니다. 좋은 정책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1차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중요한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관리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범정부 차원의 기구도 하나의 방법이다. 증세냐, 복지 축소냐는 국민이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가에 따라 자동적으로 제어된다. 복지 공약을 다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는 확신에 찬 어조도 낮출 필요가 있다. 약속을 지키는 이미지가 오히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역대 정권으로부터 배울점은….
“DJ(김대중) 정부는 진보적인 복지 정책을 시작했다. 의약분업, 건강보험 통합, 자영업자 소득 파악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다. 지금도 그런 고강도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 현재의 복지 체계는 허술한 구석이 많다. 투입되는 돈에 비해 국민은 잘 체감하지 못한다. 향후 5년간 복지 지출이 더 확대돼도 마찬가지다. 지금 개혁을 못 하면 영원히 못 할 수 있다. 후대에 큰 부담만 남긴다. 그렇다고 서구의 이상적 모델을 상정하고, 그것을 따라가려면 세금 인상 같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저항에 부딪힌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어떤 분야의 개혁이 필요한가.
“민간 복지 서비스 시설의 개혁이 절실하다. 양육비 또는 보육비 지원은 늘었는데, 아이들을 여전히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 경쟁이 일어나는 민간 분야가 공공 기관보다 서비스가 좋아야 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국내 복지 분야만큼은 민간 기관의 서비스 질이 낮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민간이 전체 복지의 90% 정도를 담당하지만 적절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 기관의 힘이 강해 통제하기 힘들다. 가령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려 했을 때도 이들 기관의 저항에 부닥쳐 포기해야 했다. 어린이집 보육료 상한선을 만들면 특별활동비 항목을 만들어 따로 이익을 챙긴다.”
―박근혜표 복지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모든 복지는 사고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농어민, 자영업자, 주부를 위한 안전장치가 크게 부족하다. 몸 하나로 버티는 사람이 사고라도 나서 다치면 가계 자체가 주저앉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상급식 하는 데 6조 원이 든다. 연간 1조∼2조 원 정도면 충분히 대비책을 만들 수 있다.”
―기초연금 수령액과 관련해 국민연금 가입자가 불리하다는 논란이 빚어졌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개념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해서 생긴 오해다. 원래 국민연금은 내가 보험료 절반을 내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 세대가 내도록 설계됐다.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의 성격이 이미 들어 있다. 사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만든 제도다. 그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기초연금을 주면 안 된다. 국민연금을 100만 원 받는다면 그 안에는 이미 기초연금 50만 원이 들어 있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 방안대로라면 국민연금을 40만 원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이미 20만 원 받는 셈이다. 그 때문에 국민연금을 40만 원 미만으로 받는 사람만 기초연금으로 부족한 부분만큼을 보전하면 형평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과적으로 박 당선인은 공약을 안 지킨 것이 아니다.”
―소득 상위 30%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할지가 논란이다.
“국민연금을 받지 않는 상위 30%에게는 원칙적으로 기초연금을 주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다. 하지만 재원 압박이 심하면 20만 원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부자인 가입자에게는 주지 않아도 된다.”
―국민연금이 2060년에 고갈된다고 한다. 보험료를 올려야 하나.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실시하기는 어렵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60세에서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조정하는 방안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연금 고갈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지….
“유럽의 경우 재원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잘 운영된다. 연금은 현 세대가 이전 세대를 위해 부담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공고히 구축돼 있어서다. 2060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기보다는 연금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 먼저다.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면 2060년의 고갈 우려 역시 없어진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이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부분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박 당선인은 분명히 ‘예’라고 대답했다. 상급병실비와 선택진료비, 간병비도 보장한다는 뜻이다.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권도 실수를 빌미 삼아 약속을 안 지킨다는 논리로 공격만 해서는 곤란하다. 새누리당도 정책을 개발할 때부터 비급여 부분까지 보장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또 근본적으로 상급병실비, 선택진료비, 간병비는 4대 질환군만 한정해서 추진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상급병실료를 보장해 주면 누가 4, 5인실 가겠냐? 간병비 문제도 간병인 부담 없는 병원을 만드는 관점으로 접근해야지, 4대 질환만 따로 빼서 보장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합계출산율이 1.3명을 넘겼다고 하지만 의미 없는 수치다. 출산율이 1.08명까지 떨어진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결혼을 늦게 하는 경향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출산율이 회복됐다는 통계는 만혼화가 더 진행되지 않으면서 생긴 착시현상이다. 학술적으로는 ‘템포 효과’라고 한다. 출산율이 2.1명이 될 때까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복지를 확대해야하고 출산, 양육, 보육 관련 서비스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복지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나.
“인수위에서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구체적인 정책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오해와 갈등이 생겼다. 예컨대 기초연금 재원을 국민연금에서 헐어 쓰겠다는 이야기는 세대 간 갈등을 일으켰다. 또 확정 안 된 기초연금 지급 세부안은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했다. 인수위의 실책으로 지지율이 출범 전부터 20%가량 떨어졌다. 정책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용하 교수 프로필
△1961년 대구 출생 △1980년 부산배정고 졸업 △1984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198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임연구원 △1993년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1994년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1998년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 국민연금 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2009년 국무총리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위원 △2011년 한국재정정책학회장 △2011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2012년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2012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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