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추천 끝났는데 여권 일각 ‘재추천’ 타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1일 03시 00분


총장후보 3명 기피 분위기… 추천委 재개최 법리 검토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헌정 사상 처음 열린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헌정 사상 처음 열린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달 7일 헌정 사상 처음 열렸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결과는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신선한 반란’으로 여겨졌다. 현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진영 일각에서 염두에 두고 있던 인사들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이상한 기류가 일고 있다. 추천위가 추천한 3명 가운데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새 정부 출범 뒤 추천위를 다시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출범할 정부의 주요 공직자 인사 라인에서 최근 추천위를 다시 열어 새로운 총장 후보자들을 추천하는 것이 법적인 문제점이 있는지 등을 검토했으며 문제가 없다고 보고 다시 추천위를 여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천위를 다시 열기로 방침이 굳어질 경우 그 시점은 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 법무실무자들은 이와 관련한 법리 검토까지 마쳤지만 이러한 상황을 박 당선인에게까지 보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천위를 다시 열기로 방침이 정해지면 실무는 첫 추천위 때와 마찬가지로 법무부가 맡게 된다.

지난주 중반부터 여권 내에서 추천위를 다시 여는 방안이 논의된 배경에 대해 정치권과 검찰 인사들은 추천위의 ‘반란’을 꼽고 있다. 추천위 개최 전 야당과 언론들은 “추천위는 인사권자가 점찍은 인사를 후보로 추천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여권과 법무부 예상과 달리 추천위는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으로 후보를 골랐다. 그 결과 여권 일각에서 내심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후보들이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헌정 사상 처음 열렸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로 추천한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검사, 채동욱 서울고검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왼쪽부터). 동아일보DB
헌정 사상 처음 열렸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로 추천한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검사, 채동욱 서울고검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왼쪽부터). 동아일보DB
▼ 여권서 내심 희망했던 후보들 탈락 이후 임명제청 절차 진행되지 않아 ▼

추천위는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검사(61·사법연수원 14기·총장 권한대행)와 채동욱 서울고검장(54·14기), 소병철 대구고검장(55·15기) 등 3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이후 검찰총장 임명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3명의 후보자 중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데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새 정부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다. 새 대통령과 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임명제청 절차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당초 법무부는 현 정부 임기 만료 전에 제청 절차를 마치겠다는 계획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검찰 안팎에선 “실질적 인사권자인 박 당선인 측에서 추천 후보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임명제청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추천위를 다시 개최한다는 발상은 담당 부처인 법무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청법의 추천위 관련 조항을 보면 위원회를 다시 개최하는 데 법적인 걸림돌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런 (추천위 재개최) 방침을 청와대나 박 당선인 측에서 전달받은 바 없고 법무부에서 법리 검토를 진행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청법 관련 조항(34조의 2)은 ‘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위원 9명으로 구성하고 후보자를 추천하면 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7일 열렸던 추천위는 일단 해산됐고 새 법무부 장관은 추천위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법무부 검찰국장과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5명의 당연직 위원 외 4명의 비당연직 위원은 다시 위촉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추천위를 다시 연다면 법조계에서 강한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후보가 추천된 상황에서 다시 추천위를 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당연직 위원들 사이에선 “추천위를 다시 연다면 참석 여부부터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추천위를 다시 여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다. 결국 박 당선인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전 검찰개혁 공약을 발표하며 “검찰총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사 가운데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추천위 관련 소문을 듣고 우려스러운 마음”이라며 “하지만 박 당선인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절차적 정당성을 존중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지성·최예나 기자 verso@donga.com
#검찰총장후보추천위#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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