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與-레임덕 靑 ‘당청 공멸’ 잔혹사 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1일 03시 00분


靑 아닌 여당이 야당 상대하게 정권초부터 권한-책임 나눠야

역대 당청 관계는 비슷한 코스를 밟았다.

취임 초기 대통령은 측근들을 여당 지도부로 세워 각종 정책 드라이브를 국회에서 뒷받침하도록 했다. 여당은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했고 야당의 비판 대상은 여당이 아니라 청와대였다. 그러다 임기 중반 이후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여당 내부에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레임덕을 부추긴다. 차기 권력을 둘러싼 당내 투쟁도 커진다. 이를 막아보고자 대통령은 개헌이나 연정 등 무리한 정치 이슈를 던지지만 여당에서부터 외면을 받곤 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당청 관계를 위해 청와대가 정권 초기부터 여당을 대등한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여기고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공유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반복되어 온 무기력한 여당, 그리고 배신

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임기 초반 총선을 통해 거대 여당을 거머쥐고도 당청 관계는 윈윈 관계를 형성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만 잡았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4월 총선 때 대통령 측근 인사가 대거 공천을 받아 당선되고, 그해 7월 대통령 측근인 박희태 당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여당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 사이 친이-친박 간은 물론이고 친이계 내부 권력투쟁까지 겹치면서 국정운영 동력은 점점 상실됐다. 그러다 2010년 청와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과 2011년 말 청와대의 개헌 드라이브를 여당이 거부하면서 당청관계는 무기력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03년 11월 출범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식 개혁’을 위한 정치적 전위 조직이었다. 2004년 총선 직후 청와대가 주도한 이른바 ‘4대 입법’을 무리하게 추진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당청 관계가 삐걱거렸다. 이후 잇따른 재·보선 참패와 당 지도부 교체로 우왕좌왕하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4년 만에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을 지휘했기 때문에 여당 소속 의원 대부분이 사실상 친박인 데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도 없어 정권 초반 당내 권력투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역으로 여당 내 비주류가 씨가 말라 건강한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대통령, 여당과 ‘공유의 리더십’ 발휘해야

한 전직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되면 여의도(국회) 협조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데도 자연스레 여의도 정치를 멀리하는 경향이 생긴다”며 “자신은 외교나 민생 등 국익을 위해 여념이 없는데 여의도는 늘 자기가 하는 일에 딴죽만 건다고 생각하고 특히 이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여당에 불만이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대통령의 불만 근저에는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실행조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이 4일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라는 강수를 꺼낸 배경에 여당의 협상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국민 담화에서 표출한 박 대통령의 ‘격노’에 여당의 협상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여당이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팀플레이를 펼치고 여권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여당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고 여당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용인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는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이 할 수 없는 국민과의 소통 부분을 함께해 줘야 한다”며 “대등한 당청 관계로 여당이 바로 서지 못하면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버린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역대 사례를 보면 여당이 무기력해지고 역동성이 무너지면 늘 국민의 버림을 받았다”며 “청와대가 아니라 여당이 야당을 상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이승헌 기자 ditto@donga.com
#야당#대통령#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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