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0)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일하던 2005년 6월 기자단과의 티타임 도중에 갑자기 한시를 읊기 시작했다. 당시 불거진 ‘행담도 개발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기자들이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맡게 되느냐”고 집요하게 묻자 중국 고사를 꺼낸 것. 당시 박 후보자는 대답하기 난처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질문에는 역사,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설명하며 피해갔다.
2008년 3월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보임됐을 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대검 기획과장을 지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일하는 등 공안보다는 기획 및 특별수사 경력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대검 공안부장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자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수십 차례 현장을 직접 살펴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공안검사’ 출신의 박 후보자 지명을 반대하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에 “공안통이라기보다는 기획 특수 공안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보는 편이 맞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박 후보자에 대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데다 후배들과 등산을 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등 내부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가 많다.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며 박 후보자는 다소 보수적 의견을 내놓았다. 헌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박 후보자는 “선거 과열로 연결돼 유권자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촛불시위 당시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둘러싸고 시민들의 통행을 막은 사건에서도 관련 규정에 대해 합헌 의견을 밝혔고, 낙태를 처벌하는 조항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에 대해선 다수의견과 달리 위헌 의견을 내놓았다.
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25년 헌재 역사상 최초의 검사 출신 소장이 된다. 그는 2011년 2월부터 헌법재판관으로 일하고 있어 재판관 출신의 헌재소장도 처음 나오는 셈이다.
박 후보자는 2012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10억2700여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박 후보자 가족은 2009년 서울 서초구 우성아파트를 불교재단인 법보선원에 기부한 뒤 전세보증금 2억2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을 내고 그 아파트에 그대로 살고 있다. 무주택자인 것이다. 다만 2010년 검찰을 떠난 뒤 4개월가량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2억4500만 원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 당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21일 티타임을 통해 “법조계에 저보다 훌륭한 분이 많은데 지명을 받게 돼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발목을 잡았던 특정업무경비에 대한 질문에는 “원칙에 맞춰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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