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긴급조치 위헌” 헌재 전원일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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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국민주권-표현 자유 침해”
근거 규정 유신헌법 53조는… “심판 대상 안된다” 제외

197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는 도구였던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해 약 40년 만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로 구속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모두 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21일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긴급조치 1, 2호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고,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했다”고 밝혔다. 또 “긴급조치 9호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헌법 개정 주체인 국민의 주권 행사를 제한했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제정 및 개정된 유신헌법 53조를 근거로 1974년 1월 긴급조치 1, 2호를 시행했고,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시행했다. 긴급조치 1, 2호는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람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9호는 집회 시위, 신문 방송 등으로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 시위를 열지 못하게 했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긴급조치는 최소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이므로 위헌심사 권한은 헌재에 있다”고 못 박았다. 이는 2010년 12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시 대법원은 긴급조치를 행정부의 명령·규칙으로 봤지만 이날 헌재는 긴급조치를 ‘법률 이상의 효력을 갖는 것’으로 판단했다. 헌법상 법률의 위헌 여부는 헌재가, 명령·규칙의 위헌 여부는 대법원이 판단하게 돼 있다.

다만 헌재는 긴급조치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 53조는 심판 대상에서 제외했다. 헌재는 “유신헌법 53조는 긴급조치 발령의 근거 규정일 뿐 심판 청구인의 재판에 직접 적용된 규정이 아니고 청구인들의 의사도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청구인 가운데 한 명인 오종상 씨는 1974년 버스에 동석한 여고생에게 정부 시책 비판 발언을 한 혐의(긴급조치 위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한 뒤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그는 2010년 헌법소원을 냈고 대법원은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뒤 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헌재가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 갑자기 선고 일정을 잡은 것은 헌재 소장이 2개월째 공석인 상황에서 송두환 재판관(헌재 소장 권한대행)마저 22일 퇴임하면 ‘재판관 7인 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이미 결론이 난 긴급조치 사건의 선고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아버지 재임 시절 사건에 대한 선고를 내림으로써 헌재의 위상을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긴급조치#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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