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사 사고’라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만의 다른 점이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와 장차관급 6명이 줄줄이 낙마했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인사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인사 사고가 너무 잦다 보니 아예 무감각해진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27일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인사 참사’와 관련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나 인사검증 책임자인 곽상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문책 등은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역대 정부는 인사 사고가 터지면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대통령의 인사가 곧 대국민 메시지’인 만큼 인사 실패는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노무현 정부도, ‘불통’ 이미지가 강했던 이명박 정부도 인사 실패 이후에는 즉각적인 처방을 내놓았다.
○ “정무직에는 정무적 책임이”
2005년 1월 4일 당시 노 대통령은 장관 6명을 교체하면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인선 발표 직후 이 부총리는 사외이사 겸직, 판공비 과다지출, 장남 병역기피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이어 동아일보가 이 부총리 장남의 대학 특례입학 부정 의혹을 취재하자 이 부총리는 임명된 지 57시간 만에 사퇴했다.
노 대통령은 이 부총리 사퇴 이틀 뒤 이해찬 국무총리와의 오찬 회동에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전례 없이 신속하게 사과했다. 이어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 등 핵심 참모 6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은 인사추천회의 멤버였다. 노 대통령은 다음 날 정찬용 인사수석과 박정규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개각을 앞두고 사흘 동안 30여 명의 후보자를 한꺼번에 검증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노 대통령은 파문 수습에 방점을 뒀다. 노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했기 때문에 참모들의 책임을 묻기가 참 난감하다”면서 “그러나 정무직은 정무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 만큼 해당 부서 책임자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노 대통령은 여야에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실시하는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계기다. 그해 9월에는 각계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를 설치하기도 했다.
○ 실체 없는 시스템 인사
이명박 정부도 출범과 동시에 인선 난맥상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이춘호 여성부,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한 것. 이 대통령은 새 정부 첫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출발이 매끄럽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유감을 표명했다.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논란 등으로 낙마하자 정동기 민정수석이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일도 있다. 당시 비선 라인에서 천 후보자를 추천한 탓에 민정수석실이 인선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정 민정수석은 “소관 수석으로서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40여 일 뒤 민정수석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6명을 교체했다.
또 2010년 7월에는 150여 개 항목에 대한 자기검증을 실시하는 질문서를 만들어 청와대 자체 검증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어진 8·8개각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등 3명이 낙마하자 질문 항목은 200개로 확대됐고 청와대 내부에서 모의 인사청문회까지 열었다. 이처럼 역대 정부는 인사 사고가 터지면 ‘사과→책임자 문책→제도 보완’의 수순을 밟아왔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시스템 인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인선 과정에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오히려 박 대통령의 단수 후보 추천→부실 검증→인사위원회의 형식적 추인으로 이어지는 ‘노(No) 시스템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인사 난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인사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임기 초반이라 누구도 이런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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