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해제 MB5년]<2> 최시중의 슬픈 예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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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감옥갈지 몰라”… 5년뒤 그는 구치소를 나섰다

2010년 1월 서울 시내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TK) 신년교례회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이상득 당시 의원에게 앞자리에 설 것을 권하고 있다. 이상득은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다 서울대에 뒤늦게 입학해 두 살 아래인 최시중과 ‘57학번 동기’가 됐다. 동아일보DB
2010년 1월 서울 시내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TK) 신년교례회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이상득 당시 의원에게 앞자리에 설 것을 권하고 있다. 이상득은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다 서울대에 뒤늦게 입학해 두 살 아래인 최시중과 ‘57학번 동기’가 됐다. 동아일보DB
《 MB가 얼마 전 정두언, 김원용, 곽승준 등을 모아놓고 “당신들 앞으로 주변에서 돈 받지 마라. 내가 사업을 해봐서 아는데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 주변에서) 돈 벌일, 사업이 엄청 많이 생긴다”고 했다고 함.(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입기자 정보보고) 》

MB 정권 5년의 뒷모습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혹시 설을 앞둔 2월 1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장면이 오버랩되지 않을까?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이 성성한 최시중은 카메라 앞에서 “국민께 정말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천신일은 구급차에 실려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퇴임 인터뷰를 하면서 최시중, 천신일의 특별사면에 대해 “사실 떠날 때 하려고 작년 8·15와 연말 때 사면을 안 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떠날 때 하려 했다’는 말도 진심이었겠지만, 명절인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올드보이들에게 설은 멀리 떨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날이다. 두 사람이 구치소에서 설을 맞게 할 수는 없었다.

최시중은 5년 전 설을 떠올렸다.

530만 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MB는 이듬해인 2008년 설날 이상득, 최시중, 천신일, 류우익을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CC로 초청했다. 코오롱그룹이 소유한 골프장이니 코오롱 사장 출신인 친형 이상득이 주선했을 것이다.

부부 동반으로 마련한 이날 라운딩은 ‘가족 모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상득과 최시중은 ‘영일만 친구’이자 서울대 57학번 동기. 50년 지기(知己)였다. 이명박과 천신일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로, 이상득-최시중 못지않게 오랜 친구였다. 네 사람은 가족 이상의 사이였다. 열흘 전 대통령실장으로 내정된 류우익만이 ‘공식적인 신분’으로 끼었다.

골프장을 모두 비웠기 때문에 남자 5명이 한조, 여자 5명이 한조로 라운딩을 했다. 골프를 마치고 모두 함께 앉은 자리. 만감이 교차하는 듯 최시중이 입을 열었다.

최시중=“역대 정권이 끝날 때는 측근들이 전부 감옥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우리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천신일=“선배, 역대 정권과 우리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최시중=“….”

천신일=“역대 정권의 측근들은 모두 치부를 하려다가 그렇게 됐지만 선배도 그렇고 이상득 부의장도 그렇고 저도 다 재력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가 치부할 일이 뭐 있습니까? (구속 수감되거나) 그런 일 없을 겁니다.”

MB나 이상득은 말이 없었다.

천신일의 말처럼 ‘우리는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의 뿌리는 바로 ‘차떼기의 고리’를 끊은 데 있었다. 한나라당에 ‘차떼기 정당’이라는 씻지 못할 낙인을 안겨준 건 이회창, 천막당사에서 당무를 보며 국민에게 석고대죄한 사람은 박근혜지만 불법 대선자금의 고리를 실질적으로 끊은 건 바로 자기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MB의 한나라당은 차떼기의 고리를 끊기 위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선자금 은행 대출을 시도한다.

강재섭 대표와 황우여 사무총장의 아이디어였다.

“내가 대표로 있을 때 불법 대선자금 모금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사실 그전에는 기업들로부터 대선자금을 모금하면서 당 대표도 따로 주머니를 챙겼다. 그 돈으로 대선 유세 때 지역에 내려가면 위원장들에게 당의 공식 선거운동비와 별도로 2000만 원씩 주곤 했다. 전당대회에 대비해 자기 사람을 만들려는 거지. 그러다 보니 기업들로부터 모금하는 액수가 2500억 원, 3000억 원으로 늘었고 급기야 ‘차떼기 정당’이 된 거다. 그 고리를 끊고 싶어 황 사무총장에게 리포트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과제를 줬다. 또 자금 소요 계획을 점검하는 것 자체가 대선 준비도 되니까.”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두 번의 이회창 선거까지…. 대선자금의 ‘검은 실체’를 누구보다 깊숙한 곳에서 목격한 강재섭이었다.

260억 원 정도가 부족했다. 2007년 대선비용 법정 제한액이 465억9300만 원이니까 무려 60%나 곳간이 빈 셈이었다. 은행 대출을 받기로 했지만 박근혜 대표 시절 천막당사로 옮기면서 여의도 당사를 팔았기 때문에 담보로 내놓을 재산도 없었다. 신용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또 은행이나 보험사는 제도상 정치자금을 대출해줄 수 없었다.

저축은행으로 눈길을 돌렸다. 경북 영덕 출신으로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나섰다. “당에 있던 사람들이 금융업계 상황을 잘 모르고, 당도 차입 경험이 없어서 내게 대출 건을 부탁했습니다. 마침 HK저축은행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해 줬습니다.”(황영기·2011년 10월 주간동아 인터뷰)

그렇게 해서 결정된 곳이 미래, HK, 영풍, 프라임 등 저축은행 4곳이었다. 저축은행들은 대통령후보인 MB의 보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대신 당 대표인 강재섭이 주 채무자가 되고, 이상득이 보증인으로 나섰다. 강재섭은 “오전 내내 도장을 찍었다”고 기억했다.

초유의 대선자금 신용대출이 실제로 이뤄질 때의 사무총장은 이방호였다. MB는 8월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이방호에게 당의 살림을 맡겼다.

강재섭은 이방호가 마음에 걸렸다. MB를 찾았다.

강재섭=“대선자금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 만나자고 했습니다.”

이명박=“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강재섭=“지금 대략 260억 원 정도가 모자랍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면 단돈 10원도 따로 걷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예전에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했지만 당 대표가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인심 쓰고, 선거 끝나고 나면 마누라 가방이나 사주고 하지 않았습니까? 득표에는 도움이 안 됐습니다.”

이명박=(강재섭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강재섭=“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명박=“뭡니까?”

강재섭=“제일 걱정되는 사람이 이방호 사무총장입니다. 이 사무총장을 교도소에 안 보내려면 후보가 직접 불러 ‘앞으로 대선을 핑계로 돈을 걷는 사람은 다 자기가 먹으려는 것으로 알겠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명박=“알겠습니다.”

강재섭은 이방호를 ‘요주의 인물’로 생각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 대표와 사무총장이 법인카드를 나눠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한도 초과가 되는 일이 많았다. 강 대표가 직접 이 사무총장에게 “어디 가서 쓰는데 늘 한도 초과냐”고 질책할 때도 있었다.

여하튼 강재섭은 “우리 정치사에서 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해 대선을 치르는 고질적 관행은 내가 전부 없앴다. 이상득, 최시중의 돈 문제는 모두 그 이전의 일”이라고 자부했다. 그래도 역사는 늘 승자의 몫. 차떼기의 고리를 끊은 공은 모두 MB에게 돌아갔다.

MB가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8일 전경련을 방문해 “문자 그대로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한 정부를 만들겠다. 저에게 직접 전화 연락을 해 달라”며 새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다 불쑥 “이제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없어졌다”고 선언한 이면엔 바로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MB가 퇴임한 지 이제 불과 한 달 열흘 남짓. 정권 재창출이라고 하지만 어디서 무엇이 터져 나올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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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최시중#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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