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을 팔고, 친척에 처갓집 돈까지 다 끌어 모아 개성공단에 투자했는데 잠정 중단이라니요. 개성공단이 생긴 뒤 9년 동안 남북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피해를 끌어안았지만 이제는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입니다.”(섬유업체 대표)
북한이 8일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라는 카드를 빼들자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냉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평생 모아 투자한 사업이 일거에 날아갈 판이지만 말조차 속 시원하게 다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입주 기업 중 상당수는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개성공단에 ‘다걸기’ 하고 있어 자칫 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더라도 생산 인력의 대부분을 북측 근로자로 충당하고 있는 마당에 북측 근로자 전원이 철수하면 조업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 “개성공단 닫으면 100% 도산”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 중단을 발표한 뒤 A 섬유업체 대표는 “정신이 빠져 아무 생각도 안 난다”며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100% 도산”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돈이 약 40억 원”이라며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고 납품이 지연되면서 생긴 손해와 신뢰를 잃은 것까지 치면 실제 손해는 100억 원도 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B 섬유업체 대표는 “지난주 북한이 통행을 금지하면서 거래처가 가을, 겨울 주문을 취소해 6개월 영업이 사실상 끝났다”며 “이미 먹을 게 다 떨어져 우리 직원의 철수 여부를 논할 상황도 못 된다”고 하소연했다.
C 업체 대표는 “개성공단에 남은 완제품과 반제품이 두 트럭 분량인데 화물차가 다닐 수도 없고, 옮겨 실을 인력도 없어 걱정”이라며 “제때 가져오지 못하면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발표 직후 개성공단기업협회 한재권 회장, 유창근 옥성석 부회장, 장상호 상무 등은 협회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뉴스 속보를 보며 회의를 계속했다. 유 부회장은 “개성공단을 유지하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남쪽 직원들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업체 사장들은 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만나 회의를 연 뒤 공식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 주재원 신변 안전 여부 촉각
정부는 당초 공단 내 근로자의 신변 안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북한이 이날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운영을 잠정 중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북한이 조만간 공단에 남아있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에 대해 ‘전원 철수 시기’를 통보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공단에 남은 한국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위기 고조 전술을 펼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군 당국도 개성공단의 한국 근로자 신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 관계자는 “개성공단 주변 지역과 남북관리구역에서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다”면서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경우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공단 내 한국 근로자가 인질로 억류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한 개성공단 입주 업체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달리 북한에서는 개성공단 투자자들을 매우 깍듯이 대한다”며 “인질, 볼모 등 국내 정치권에서 쓰는 말들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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