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핵 줄다리기]<하>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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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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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위협 - 中팽창 속 한국 손발 묶으면 美도 피해” 설득해야

“한미의 좋은 관계가 한미 원자력협정의 순탄한 개정 협상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 협상을 총괄했던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말이다. 그만큼 어렵고 민감한 협상이란 의미다.

한미 양국은 곧 재개될 본 협상을 앞두고 요즘 팽팽한 물밑 신경전을 벌인다. 한미 당국자들은 9일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발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길이 안 보이는 곳에도 반드시 길은 있기 마련이다. 북핵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의 ‘비확산 원칙’과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절묘하게 충족시키는 윈윈 해법이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 윈윈 해법을 위해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5대 과제를 정리해봤다.

① 북핵 문제가 있는 한 원자력협정 개정은 안 된다?

미국은 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이유로 핵무장에 나선다면 동북아 지역의 ‘핵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부정적인 결정적인 이유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핵과 한국의 원자력 문제는 별개 사안임을 강조한다. 한국은 현재 가동 중인 23기의 원자로 외에도 건설 중이거나 추진 단계인 7기를 합쳐 모두 30기의 원자로를 보유하게 될 세계 5대 원전 강국 중 하나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전체 에너지에서 원자력의 비중도 30%가 넘는다. 임만성 KAIST 교수는 “산업적 측면의 원자력과 군사적인 북핵은 분리하고, 이란 등 다른 중동 국가들과도 차별화시키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② ‘골드 스탠더드’는 절대 깰 수 없는 황금률인가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원자력협정과 관련해 “원 투 스리(one two three)”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미국과 원자력 협력 시 요구되는 9가지 조건을 명시한 미국의 원자력법 123조를 부르는 말이다.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를 할 때 미국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원자력협정의 제8조 C항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은 이 123조와 ‘골드 스탠더드’(신규 또는 개정 원자력 협상에서 농축과 재처리를 모두 금지시킨다는 원칙)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이 중동 국가 등 정세가 불안정한 지역에는 골드 스탠더드를 철저히 적용하지만 한국 같은 원전 강국에는 개별적 접근 원칙에 따라 별도로 대처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골드 스탠더드의 적용 기준에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한국 내 ‘핵 무장론’은 무시하는 것이 최선인가

한국 정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의 핵 개발 주장이 잇따르는 것이 곤혹스럽다. 미국이 개정 반대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른바 ‘비확산 마피아’들은 ‘한국인의 66%가 핵개발을 지지한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개정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광석 국제전략연구부장은 “정부와 의회가 한국의 핵 비확산 의지를 천명하고 관련 정책과 제도를 강화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여론을 역으로 협상에 활용하며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북핵의 위협과 중국의 팽창 앞에서 동맹국(한국)의 손발을 묶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 원자력협정 개정은 ‘제로섬’ 게임인가

만약 개정 협상에 실패해 한미 원자력협정이 파기되면 한국의 원자력업계와 컨소시엄 형태로 세계의 원전 수출시장을 공략해온 미국 업체들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원자력업계는 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의회와 행정부를 압박하는 ‘한국의 우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11년 미 의회가 ‘골드 스탠더드’ 관련 법안을 발의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300만 달러 이상의 로비 자금을 쓰기도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핵 비확산이란 미국의 국익이 손상된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으로만 인식해선 안 된다. 협정 개정은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원자력 발전에도 도움을 주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⑤ 원자력협정 개정이 만병통치약인가

만약 이 어려운 협정 개정에 성공한다고 해도 한국이 직면한 사용후핵연료의 포화 문제 등이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재처리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논의 중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처리)’ 방법은 10년 시한으로 양국 공동연구가 막 시작된 단계에 불과하다. 그 연구가 성공한다 해도 상업화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2016년이면 본격화할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포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여기서 뽑아낸 핵연료를 태울 고속로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다고 해서 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간저장소 설치 등 국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고 토로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원자력협정#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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