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핵심역할 캠프출신 행정관들… 관료 상관 밑에서 보고서 쓰다 퇴근
눈치 보여 모이지도 못하고 한숨만
“내가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실 보좌관 출신으로 대선 때 핵심 실무 역할을 하다 청와대에서 근무 중인 A 행정관은 10일 기자와 만나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청와대에 처박혀 하루 종일 관료들 지시를 받으며 보고서만 쓰다가 퇴근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업무 시작 한 달여 만에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토로하는 대선 참모들이 적지 않다.
대선 참모의 상당수인 국회 보좌진 그룹은 대부분 각 의원실의 선임 보좌관 출신으로 의원실 직원들을 관리했었다. 대선 때도 아이디어를 내면 즉각 핵심 포스트에 있는 의원들을 통해 시행되곤 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선임행정관, 비서관, 수석비서관까지 층층시하에 가려 있다. 대선 참모 출신 한 행정관은 “수석들이 비서관만 데리고 회의를 하다 보니 행정관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며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엔 “대선 참모 보좌진들의 급수를 높게 주지 마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침도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 들어올 대선 참모 출신 행정관 명단을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대선 참모들의 경우 대체로 나이에 따라 40대 중후반은 2, 3급, 40대 초반은 4급에 주로 임명됐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50명 중 대선 때 함께 뛰었던 이는 9명뿐이다. 수석은 이정현 정무수석 한 명뿐이다. 나머지 수석과 비서관은 대부분 정통 관료 출신이다. 대선 참모 출신 행정관들은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보고서 작성에 시간을 보내고 출퇴근 시간도 엄격한 관료 특유의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책 파트의 한 행정관은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발 빠르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 부처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세끼를 모두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직원끼리 먹으며 하루 종일 부처 업무를 중복해서 하다 보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라며 “정부 출범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창조경제 개념을 잡고 로드맵만 짜고 있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시스템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들은 서로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있다. 대선 참모 출신 1급 비서관들도 “측근이라고 나선다”는 얘기를 들을까 조심하는 모습이다.
이런 사정 속에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과 정무감각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친박(친박근혜) 핵심 의원은 “관료들은 청와대에서 승진 생각이 우선이겠지만 그래도 대선 참모들은 박근혜정부 성공을 위해 일할 것”이라며 “대선 참모 출신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수석비서관은 “선거 참모들이 부동산정책,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국정은 선거와 달리 전문성이 중요한 만큼 관료 중심 운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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