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도 희천 발전소 건설 부대 중대장 김옥철 대위가 울먹이며 집으로 들어온다. “당신…. 기념 사진 찍었어요?”라며 그의 아내 역시 감격스럽게 묻는다. 작년 북한 TV에서 방송한 영화 ‘소원’의 마지막 장면이다. 김정일이 사망하기 이틀 전 외국인들을 시사회에 초청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유명한 영화이다. 두 번의 촬영 기회를 놓쳐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주인공 옥철은 ‘장군님의 배려’로 기념촬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평생의 소원을 이룬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지만 북한 텔레비전이 자랑스럽게 반복하는 ‘예술영화’다.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 ‘1호 열차’ ‘1호 도로’ ‘1호 배우’ 등과 같은 원리로 부르는 호칭이다. 북한에서 ‘1호’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 의식이다. 인민보안성 호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박현국(가명·40대) 씨는 “군인들의 경우 ‘1호 사진’이 있다면 진급과 직책 이동에 도움이 된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혁명’에 동참한 데 대한 인증서 역할을 한다.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가면 며칠 후에 해당 부대나 공장 등에서는 액자 수여식이 열린다. ‘1호 사진’을 함께 찍은 사람들은 액자를 받아 집안 깨끗한 벽에 걸어 둔다. 영화에서 김옥철의 부인은 “영원한 가족사진이고, 가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김정은이 북한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지 약 15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4월 13일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된 지는 딱 1년이 됐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단체사진에 ‘사랑의 기념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북한 당국은 ‘1호 사진’을 남발하고 있다.
북한이 연일 도발 위협의 수위를 높이는 이때, ‘1호 사진’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1호 사진’에는 북한 권력자 김정은과 내부체제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일성 어록은 김정일 어록으로, 김정은 어록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일 사진을 김정은 사진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생산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그래서 북한 사진의 진실과 사진가의 거짓을 분간해 내는 작업은 ‘김정은의 북한’을 이해하는 중요한 접근법이다. 2012년 1월 1일∼2013년 3월 31일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 사진을 전수 분석해 봤다.
숫자로 보는 김정은 사진
455일 동안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 사진은 475장이다. 하루에 여러 장이 게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일 김정은의 사진이 실린 것은 아니지만 게재 빈도는 전 세계 정치 지도자 중 최고다.
가장 많이 게재된 형식인 단체기념사진은 모두 175장으로 전체의 37%에 달한다. 3장 중 1장 이상이 단체기념사진이다. 기념사진에는 수백 명의 군인이나 인민이 함께 등장하는데 가장 많은 경우 사진 1장에 1925명이 들어가 있다. 175장의 기념사진 속 등장인물(간부 제외)을 다 합쳐 보니 약 12만4000명이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약 50만 명, 그러니까 2500만 북한 인구의 상위 2% 정도가 최고지도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이다. 현지지도 사진이 136장(28.6%), 행사 사진이 124장(26.1%)이다. 북한을 방문한 외빈을 만나는 사진은 총 6장으로 1.2%에 불과하다.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장 많은 사진을 게재한 날은 2012년 7월 26일. 이날은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실명으로 처음 등장한 날이다. 6개 면에 김정은 사진 28장이 게재됐다.
▼ ‘1호 촬영가’ 위세 막강… 카메라 가리면 총리도 밀쳐 ▼
김기남이 이미지 메이킹 지휘
기자가 2006년 굿네이버스와 함께 방북했을 때 평양에서 만난 북한 사진기자는 ‘1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선별된 ‘1호 촬영가’들이라고 확인해 줬다. 김정은을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김정일을 촬영했던 40대 후반의 촬영가가 지금도 김정은을 찍고 있다.
김정은을 찍는 사람들은 주로 일본 니콘사의 최신형 디지털카메라(현재는 NIKON D4 모델)를 지급받는다. 가끔 캐논 카메라를 쓰기도 한다. 수백 명이 등장해야 하는 단체사진을 촬영할 때는 필름을 사용하는 중형 카메라(핫셀)가 추가로 투입된다. 김정은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라면 내각총리로 임명된 박봉주를 손으로 밀어도 된다. 그만큼 정치적 힘이 강하다. 그 옆의 김양건 비서도 언짢은 표정이지만 길을 내준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이들이 누르는 셔터에서 시작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들을 지도하는 김기남 선전담당비서와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 사장들이 선전 담당 ‘브레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조사 기간인 15개월 동안 장성택 최룡해에 이어 세 번째로 현지지도에 많이 등장한 김기남은 평생 한 번도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으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이미지 메이킹을 지휘하고 있다.
방문 경제현장의 90% 이상이 평양시내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김정은 시대 ‘1호 사진’은 업그레이드됐고, 북한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배급’하기 시작했다. AP통신 평양지국 설립을 허락하고 유튜브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신문을 PDF 파일로 전송해 주고 있다.
김정은은 짧은 기간에 그것도 북한 사회에서 특별히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로 권력을 물려받았다. 그런 김정은이 지도자로 주목받기 위해 택한 방식은 뭘까? 처음 선택한 방법은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하기’였다. 할아버지와 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인민들과 신체 접촉을 갖는다. 하지만 너무 무서운 존재의 팔을 끼다 보니 발은 저만치 떨어져 있고 상체만 붙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주목받기 위해 김정은이 택한 두 번째 방법은 경제 현장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김정은은 강성대국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건설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아파트와 놀이공원, 병원 등 생활수준이 향상됐음을 증명하는 건설 현장을 보여주었다. 사진만 봐서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김정은 시대에 크게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방문한 시설의 90% 이상이 평양 시내에 위치해 있다. 평양 이외의 곳은 보여줄 게 없었던 것이다.
주목받기 위해 김정은이 선택한 세 번째 방법은 군사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은은 곧바로 백령도, 연평도 등과 마주한 전방부대를 방문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위장막 아래 임시로 설치된 지휘소에서 화력 훈련을 관람한다. 지휘봉을 휘두르고 망원경을 들어 동태를 살피고 권총으로 사격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 계속 웃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부터 정치지도자보다 군사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중요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김정은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영도력을 과시하기 위해 호전적인 모습과 발언을 계속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지도 날짜 처음 명기
김정은 시대에도 보안은 철저하다. 사진에는 누가 찍었는지 언제 찍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원래 촬영시간, 카메라 기종, 렌즈, 셔터 속도 등의 촬영 정보인 ‘메타 데이터’가 함께 기록된다. 하지만 북한은 촬영 정보를 지운 후 외부에 사진을 배포한다. 노동신문 기사에서도 김정은의 현지지도 날짜를 표기하지 않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관행이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의 사진에는 날짜가 병기되어 있다. 3월 23일 군부대를 방문했다, 3월 27일 군사 명령을 하달했다 등이다. 전례 없이 김정은의 동선에 대해 장소와 날짜를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김정은의 행보가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시그널로 보인다.
1호 사진에서 북한 체제 들여다보기
북한은 또 회의 장면을 계속 공개하고 있다. 2013년 1월 2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 협의회를 주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처음 공개된 이 협의회는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유사하다. 1월 23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2087호)을 채택했다. 북한은 외무성 비난 성명에 이어 1월 27일 회의 장면을 공개했다. “중요 현안을 김정은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내부 협의를 통해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이희옥 교수는 말한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정보를 독점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이 이 사진에서 드러난다. 참석자 모두 김정은의 지시를 받아쓰기 위해 볼펜을 들고 있지만 김정은은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 참석한 8명 중 서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김정은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2명뿐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때부터 정보를 독점했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은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북한 내부를 장악해왔다”며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아버지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김정은 사진에서 드러난 북한 내부체제의 ‘신호’는 한국과 미국 등이 북한을 다룰 때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김정은 앞에만 서류 ‘정보독점 스타일’ ▼
대폭 증강된 경호원
2월 12일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계기로 국제사회와 대결하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사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경호원들의 모습이다. 3월 23일 제1973군부대 지휘부 시찰 사진에서는 무려 7명의 경호원이 등장한다. 현지 지도 수행원보다 많은 경호원.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경호원의 무장도 강화된 상태라는 것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경호원은 일반 군인과 달리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있고 개인 소총과 여분의 탄창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탄창은 일반적 30발 탄창을 나선형으로 개조한 것으로 70∼90발이 들어간다. 등에 멘 2개의 배낭형 탄창에 들어간 총알까지 고려하면 1인당 210∼270발의 총알을 휴대하고 있는 것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경호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무게인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경호원들이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기도 하고, 북한 내부에 경각심과 결속력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으로도 해석된다”고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말한다.
부인 이설주를 적극 활용
김정은은 외교관을 만나면서 동부인하는 국제관례에 따르는 형식으로 이설주를 처음 공개했다. 북한 이설주가 실명과 함께 김정은의 부인이라고 처음 공개된 것은 2012년 7월 26일이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에 나온 다른 사진을 보면 이날 김정은은 북한 주재 중국 대사인 류훙차이와 류 대사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성, 그리고 서양인들과 함께 평양 시내의 능라 유원지를 둘러보고 같이 놀이기구를 타기도 했다. 이것은 이날 행사가 일종의 외교 행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설주의 경우 젊은 데다 세련된 외모를 연출할 수 있는 만큼 정상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자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대학원대 이우영 교수는 “북한은 인민복 대신에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의 김정은 초상사진을 공개하고 이설주는 양장을 입는데 이것은 김정은이 반(反)서양적이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에서 드러나는 김정은 성격
김정은이 북한 매체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 9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신문에 2010년 1월 9일 ‘몰래’ 등장했다. 노동신문은 당시 김정일이 105 탱크사단을 방문했다면서 20여 장의 사진을 공개한다. 여기서 951이라고 번호가 쓰인 탱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김정은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지난해 1월 8일 방송한 김정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혀졌다.
김정은이 조심성이 떨어지는 성격임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선 그가 가운데에 서야 한다. 철제로 만들어진 조립식 연단의 맨 아래쪽 가운데에는 가로 2cm 세로 5cm 정도의 빨간색 테이프가 붙어 있다. 김정일의 경우 정확하게 다리로 그 마크를 가렸다. 김정은은 대충 서서 찍거나 또는 다리를 벌리기도 해서 마크가 보인다.
김정은이 주민들의 집들이에 간 적이 있었다. 서너 집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북한이 공개했는데 공통된 집들이 선물이 있었다. 평양소주였다. 안주도 없는 술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잔만이 놓여 있는데 김정은이 소주를 따라준다. 괄괄한 성격을 보여준다.
거대한 세트 속 인민들
북한에서 공식적인 사진 촬영은 영화촬영 현장과 유사하다. 날씨를 고려한 후 대형 연단과 구호판이 움직이고 배경이 정리된다. 연출은 최고 지도자와 간부들, 그리고 촬영 담당 사진가들이 맡는다.
출연하는 모든 인민과 군인도 조연 배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주연배우인 김정은의 액션에 대해 조연과 엑스트라들은 크게 리액션을 보여준다. 배를 타고 연평도 앞바다 장재도를 방문한 김정은을 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주민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3월 18일 10년 만에 경공업대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상경한 참가자 수백 명이 저마다 오른손에 가방을 들고 평양역을 한꺼번에 빠져나온다. 일사불란하다. 사진과 화면을 염두에 둔 행동들이다.
에필로그
기자는 2003년부터 북한의 정치 사진을 꾸준히 보고 있다. 노동신문에 1949년부터 2005년까지 게재된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분석해 북한대학원대에서 “북한 ‘1호 사진’의 변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여름 ‘김정일.jpg’(도서출판 한울)를 펴냈고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여전히 이미지를 중시한다. 김정일은 영화광인 데다 이미지 연출에 아주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화면에 드러나기보다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카리스마를 만들고 지키려 했었다. 그에 비해 김정은 시대는 훨씬 개방적이고 노출지향적이다. 북한 읽기의 기술이 높아진다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북한은 이미지 정치를 통해 권력을 정당화하고 3대 세습에 대한 지지를 점점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줘야 하는 김정은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김정은이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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