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그룹) 총수가 일감 몰아주기나 횡령·배임죄로 처벌을 받으면 금융계열사를 매각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대기업 금융계열사에 대한 ‘계열분리 명령권’을 갖고 그룹 지배구조에 직접 칼을 대려는 것이다. 또 정부는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해소를 압박하기 위해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계획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 심사소위원회 심사자료’에 따르면 국회와 정부는 현재 금융지주회사와 은행, 저축은행에만 시행됐던 ‘대주주 자격 유지 심사’를 보험, 증권, 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여야는 최근 5년간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해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은 대주주는 금융계열사 지분이 10%를 넘어서면 초과 지분을 6개월 내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매각해야 하는 지분에는 총수뿐만 아니라 특수관계인 지분도 포함된다.
지난해까지는 일감 몰아주기가 적발돼도 총수를 직접 처벌하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로 적발되면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최종 통과되면 총수가 배임·횡령이나 탈세로 처벌받아도 해당 그룹은 금융계열사 지배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계열사를 중심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 등 상당수 그룹은 지배구조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계열분리명령제’와 사실상 다를 바 없고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계열분리명령제는 ‘금산(金産)분리’를 훼손하거나 독점 우려가 있는 그룹에 계열사 분리를 명령할 수 있는 제도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검토되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는 “다른 법률로 이미 처벌을 받은 총수에 대해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 금지의 원칙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만큼 위헌적 법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또 그룹들에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 계획과 시기, 방법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기존 순환 출자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겠다고 한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공정위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12개 그룹이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려면 10조7000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회적 압력을 통해 대기업들이 점진적으로 기존 순환출자를 없애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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