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며 재수사를 요청하는 민원을 3년 동안 6000건 넘게 낸 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기관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국민권익위원회로 왔습니다. 충분히 얘기를 들은 뒤 경찰과 협의해 재수사를 하는 대신 그분도 결과가 나오면 승복하기로 약속하면서 민원이 해결됐습니다.”
이성보 권익위원장(57)은 ‘민원왕’ 사례를 들어 권익위의 민원 해결 노하우를 설명했다. 그는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눈 뒤 함께 밥을 먹고 끝장토론을 하면 어느 순간 민원인이 공무원을 신뢰하게 된다. 그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낸 뒤 지난해 12월 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됐으며 최근 새 정부에서 유임 통보를 받았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원장 접견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국민지킴이’ 권익위의 향후 정책 방향을 들었다. 채널A는 29일 오전 7시부터 30분간 ‘박근혜정부의 청사진, 신임 장관에게 듣는다’ 코너에서 이 위원장과의 대담을 방영한다. 대담은 박성원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진행했다.
―유임될 것으로 예상했나?
“지난해 12월 임명돼 새 정부가 출범했을 때 몇 달 안 지난 상황이었다. 개인적 욕심일지 몰라도 계속 하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정무직인 만큼 새 대통령께서 어떻게 결정하실지 기다렸는데 (유임) 연락을 받게 됐다. 새로 임명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상반기에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반대 의견인데….
“법무부도 입법 취지와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는 것으로 안다. 다만 직무와 관련 없이 금품을 수수했을 때 처벌하는 문제에 약간 견해차가 있다. 현재 다각도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필요하다면 국무조정실의 조정기능을 활용해서라도 상반기 중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도 처벌한다’는 원칙은 유지되나.
“그렇다. 지금은 직무 관련 대가성이 있어야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사례를 보면 공직자와 일반인이 거액을 주고받아도 대가성이 없다며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고질민원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2011년 7월 정부기관 최초로 고질민원 전담팀을 만들었다. 능력이 우수한 분들을 모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결과 현재까지 담당했던 고질민원 56건 중 75%인 42건이 합의처리로 끝났다. 이들의 노하우는 무엇보다 민원인의 요구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운영했던 국민행복제안센터를 설치한다고 했는데….
“인수위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국민행복제안센터를 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에 설치해 상시 운영하려고 한다.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온라인, 전화, 방문을 통해 할 수 있다. 접수된 제안은 민원분석시스템을 통해 분석하고 내용이 좋으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것이다. 또 현재 여러 정부기관에서 받고 있는 국민제안 처리 실태조사와 평가도 추진하려고 한다.”
―권익위의 갈등조정 노하우를 국민대통합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종 갈등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권익위는 타협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이끌어내는 노하우를 갖고 있어 국민대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국민통합을 위해 권익위는 집단갈등 민원을 적극 발굴해 조기에 해결하려 한다. 권익위 힘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경우 국무조정실과 협업을 통해 해결할 것이다. 단, 지금은 행정기관이 권익위에 조정을 요청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데 앞으로 법적 근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막말 파문 등 최근 판사들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적지 않은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떠난 입장에서 조언을 하려니 조심스럽다. 다만 많은 민원인을 접하다 보니 결국 속에 맺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판사들이 말을 안 들어주면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힘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장을 많이 다니는데 특히 기억나는 사례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30년 전 남원의 교룡산이 동강났다. 최근 확장공사에 들어갔는데 주민들이 지하도를 내 달라고 민원을 냈다. 한국도로공사, 남원시 등과 협의를 거쳐 육교를 만드는 것으로 절충했다. 이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교룡산성도 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권익위가 슬로건처럼 내세우는 말이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다. 그만큼 현장 중심의 행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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