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국군포로 “납북 의사들이 평양병원 이끌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8일 03시 00분


본보 기사 보고 박선영 前의원에 편지 “김시창 선생에게 치료받은 일 못잊어”
국군포로 신고센터 13일 문열어

국군포로 출신의 김모 씨(87)는 3일 ‘6·25전쟁 때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집단 납북돼 결국 대부분 숙청됐다’는 동아일보 보도(A1면)를 보고 바로 편지지를 집어 들었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써나갔다.

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던 자신을 도와줬던 납북 교수의 이름이 동아일보 기사에 언급돼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인 이혜경 박사(물망초인권연구소 간사)가 밝혀낸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의 납북자 명단에 포함된 김시창 교수였다. 이 박사에 따르면 김 교수는 1955∼1960년 평양의대 신경외과 강좌장(학과장의 북한말)을 지냈지만 북한에 이용당한 뒤 간첩 혐의로 처형당했다.

“동아일보 지면에 신경박사 김 선생의 이름이 나와 나를 몹시 감동시켰습니다. 김 선생은 내가 (전쟁 포로로 끌려갔을 때) 북한 인민군 39호 병원에서 만나 머리 신경 방조(곁에서 도와준다는 뜻)를 받은 잊을 수 없는 선생이었습니다.”

김 씨가 박 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김 교수가 북한 당국에 의해 어떻게 처형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도 언급됐다.

“그 뒤 (나는) 함경남도 북청으로 생활터전을 이동해 김 선생과 연계가 없었습니다. 노동신문에서 김 선생이 독일에서 열리는 의학 논문 발표 모임에 참가했다가 남한 영사관에 드나들어 감시 대상이 됐다는 기사를 봤을 뿐입니다.”

평양의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박사의 연구결과대로 김 교수가 간첩 혐의로 처형당했을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인 셈이다.

김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노동신문 기사를 본 건 1960년대였다”고 말했다. 편지에서도 “납북된 의사 집단은 평양병원을 주도했다”며 “서울 광화문 공안과 병원의 박사 선생도 납북돼 54호 병원에서 안과담당 박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최초의 안과 전문의로 납북됐다가 탈출한 공병우 박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와 국군포로 지원단체인 물망초는 1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머리재빌딩 309호에 국군포로 신고센터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02-585-9963, 070-4194-9962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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