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 수행단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8일 오전 8시경(워싱턴 현지 시간)이다. 피해 여성 A 씨(21)에게서 관련 내용을 들은 워싱턴 한국문화원 관계자가 청와대 대변인실에 A 씨의 주장을 알렸다. 대변인실 관계자가 곧바로 윤 전 대변인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자 윤 전 대변인은 모두 부인했다. 이 내용은 오전 9시 반경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에게도 보고됐다. 이 수석은 오전 10시 반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에 참석하기 위해 의회로 향하던 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진행되는 사이 이번에는 윤 전 대변인이 대변인실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A 씨가 미국 경찰에 윤 전 대변인을 신고했고, 경찰은 주미 대사관을 통해 윤 전 대변인의 신원 조회를 요청했다. 또 미국 경찰이 방미 취재기자단의 프레스룸이 마련된 페어팩스 호텔로 찾아오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안 윤 전 대변인은 대변인실 관계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은 뒤 서둘러 귀국했다.
홍보수석실이 쉬쉬하던 사이 윤 전 대변인이 다음 방문지인 로스앤젤레스에 오지 않은 사실이 일부 언론에 알려지자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은 ‘윤 전 대변인 부인의 위독설’을 공공연히 퍼뜨리기도 했다. 9일 오전 9시경(로스앤젤레스 현지 시간)부터 미국 현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윤 전 대변인이 서울로 먼저 돌아간 이유가 ‘성추행 의혹’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공식 보고한 시간도 이때다. 안봉근 대통령제2부속비서관이 사건 내용을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 문제는 철저하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며 윤 전 대변인의 경질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홍보수석은 오전 10시 50분 윤 전 대변인의 경질을 발표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자신의 대변인이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지 않은 채 급거 귀국한 사실을 하루 가까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윤 전 대변인이 동행하지 않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뒤에야 정식 보고가 이뤄진 점도 석연치 않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 홍보수석은 10일 귀국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사건의 내용을 파악한 직후 대통령께 보고드렸고 그 즉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건 내용을 알고도 하루 늦게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데다 언론에 알려지자 조치를 취했음에도 “대통령의 일정이 많아 보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이 수석의 해명이다.
이 수석의 사과 성명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수석은 이날 사과성명을 내며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박 대통령을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당장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대통령이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야지, 사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 국민의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은 이 사건을 보고받은 뒤 무척 화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비행기에서 방미 수행단들과 환담을 했지만 윤 전 대변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이 있을 수 없는 잘못을 한 데다 여러 부분에서 거짓말을 한 데 대해 크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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