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에 물품 구입을 강제하는 ‘밀어내기’ 관행에 대해 본사가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최근 ‘남양유업 사태’에 대한 이 같은 내용의 입법 계획을 발표하고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갑(甲)의 횡포’가 잇달아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국회와 정부가 논의 중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의 범위와 강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핵심 법률인 공정거래법에 대한 개정안을 비롯해 노동·환경 규제강화 등 재계가 반대하는 다른 법안들까지 합치면 당장 6월에 논의될 경제민주화 관련법만 10여 개에 이른다.
○ 대리점 상대 불공정행위에 강력한 응징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14일 국회에서 정책간담회를 열고 대기업과 영업점(대리점) 간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 측 관계자는 “지금 불공정거래 관련 법규는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처벌이나 제재 수단도 부족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공정거래법 23조에 규정돼 있는 구입 강제, 판매목표 강제 등 본사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대리점 사업자가 힘을 합쳐 사측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를 확대 도입하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보상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기존 공정거래법의 보완으로는 부족하다며 ‘제2의 남양유업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예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종걸 의원은 이날 대리점 거래를 규정하고 표준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다음 주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공개한 새 법률안은 새누리당의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대리점 사업자에 대한 구입 강제, 반품 금지 등 불공정행위에 본사가 대리점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당초 시민단체들은 ‘10배 배상’을 제안했지만 법의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3배로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술 유용과 납품단가 후려치기, 부당 발주 취소 및 반품행위에만 적용되고 있다.
○ 경제민주화 법안 줄줄이 쏟아져
‘남양유업 방지법’ 외에도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줄줄이 국회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 4월 국회에서 무산된 경제민주화 2호(가맹사업법), 3호 법안(공정거래법)이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차례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현대판 노예계약’으로 불리는 프랜차이즈 사업본부와 가맹점 업주와의 관계에서 업주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속고발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정부 감시를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앞서 지난달 본회의에서 경제민주화 1호 법안(하도급법 개정안)을 비롯해 고액연봉 기업 임원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정년 60세 연장법 등을 통과시켰다.
이 밖에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과 대주주 자격심사를 증권 보험사 등으로 확대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도 각각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정부 부처들도 경제민주화 제도 정비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태세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으로 6월에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이때 안 되면 시간이 갈수록 김이 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만한 법안들이 일사천리로 나와 당혹스럽다”며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에는 공감하지만 법안들의 강도나 범위, 속도가 모두 지나친 감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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