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까지 대기업들의 청년채용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공직자 신분이면서 일정 시간만 일하는 이른바 ‘시간제 정규직’ 공무원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의 합의사항이 담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협약’을 3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표했다.
앞서 세 기관은 박근혜정부의 핵심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노사정 대화를 시작했다. 노사정이 고용 및 노동 현안 전반에 걸쳐 합의에 이른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이후 4번째다.
○ 일자리 창출에 ‘방점’
노사정은 공공기관의 경우 향후 3년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신규 채용하는 데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달 의결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다. 특히 이번 협약에는 ‘대기업이 2017년까지 청년층 신규 채용을 전년에 비해 증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기업 여건에 따른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앞으로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동결하거나 축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총 관계자는 “고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뜻을 모았다”면서도 “개별 기업에 이를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기업 입장에선 정년 연장 등 고용시장의 급격한 변화가 예정된 가운데 청년 고용 부담까지 지게 돼 불만이지만 겉으로 드러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도 고용환경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사정은 이날 “고용이 안정되고 불합리한 차별이 없으며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적용된다. 통·번역 등 시간제 근무가 가능한 직무가 일순위로 꼽힌다.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새로운 공직 형태가 검토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한 명이 하는 업무를 오전, 오후로 나눠 두 사람이 일하는 것. 모두 정식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급여는 나눠 받는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기존의 불안정한 임시직이 아니라 고용이 안정되고 차별이 없는 ‘시간제 정규직’ 근로자를 뽑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공론화 과정과 제도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기업은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에 노조는 직무전환, 임금·근로시간 조정, 휴업·휴직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노사 자율적으로 고임금 임직원의 임금 인상을 자제하기로 했다.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현 상황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기업 노조들이 ‘임금 안정’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이 밖에 노사정은 60세 정년제 연착륙을 위해 임금피크제, 임금구조 단순화 등 임금체계 개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확대 개편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 통상임금 등 곳곳에 걸림돌
노사정은 60개항에 걸친 합의를 내놓았지만 통상임금이나 근로시간 개선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합의에 실패했다. 통상임금 문제는 노사정 입장 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대화를 제안한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통상임금의 경우 단기간에 해결 가능한 사안이 아니다”며 “대화 참여를 위한 노사의 전향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 즉 법정근로시간 범위 내에 포함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다. 현재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고 연장근로 한도는 12시간이다. 현재는 휴일에 일하면 이에 따른 가산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연장근로에 포함되면 휴일 가산수당에 연장근로 수당을 추가로 받게 된다. 노동계는 이번에 제도개선 계획을 합의문에 담으려 했지만 경영계는 반대했다. 이 문제가 노사정 대화 막바지까지 불거지면서 고위급 회의가 한 차례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노사정은 추후 협의를 통해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다.
노동계에서는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 개선 등 노조법 개정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노사정합의 때처럼 노동계가 ‘들러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노동시간 단축,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등을 합의문에 담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6월 국회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희범 경총 회장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핵심 요소인데 선진국만큼 전면적인 개혁을 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화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배제된 것도 향후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합의 내용이 현장에서 반영되려면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나 경영계는 민노총의 참여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며 “그럼에도 민노총이 외면하면 사회적 소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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