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비화 휴대전화’ 나흘간 도청 무방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北 핵시설 재가동 선언한 4월 2일… 합참 대령이 2급기밀 통화폰 분실
5일에야 국방부 정식보고-암호 변경… 보안업체 “암호 해독 가능했을수도”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이 계속되던 4월 초 2급 군사기밀 내용까지 통화할 수 있는 군의 비화(秘話) 휴대전화 1대가 분실된 뒤 약 나흘간 사실상 방치됐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군은 분실사고 발생 3일 뒤에야 군 수뇌부의 모든 비화 휴대전화 300여 대의 암호키를 변경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대북 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내부 보안 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여권과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의 중간간부(과장급)인 A 대령은 4월 2일 오후 10시 반경 자신의 비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A 대령은 이날 저녁 지인의 상가에 들렀다가 지하철로 퇴근하던 길이었는데 하차하는 순간 휴대전화 분실을 인지했다.

A 대령의 분실 신고는 다음 날인 3일 오후 9시 10분에 이뤄졌다. 분실을 인지한 지 22시간 40분 만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비화 휴대전화는 보안관리 지침에 따라 분실하면 ‘24시간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 A 대령이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혼자 찾아보려고 동분서주하다가 제한시간 24시간에 맞춰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은 A 대령으로부터 분실 신고를 접수한 뒤 분실 사실은 국방부에 곧바로 통보했지만 정식 보고는 이틀이 지난 5일에야 이뤄졌다. 이에 대해 합참은 16일 “보안사고 조사 등에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합참은 국방부에 정식 보고를 한 뒤에도 휴대전화를 찾지 못하자 모든 비화 휴대전화의 암호키를 변경했다. A 대령은 서면 경고를 받았다. 현재까지 휴대전화는 회수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위치 추적 결과 마지막 신호음이 잡힌 곳은 A 대령의 지하철 승차역 인근이었다. 다양한 탐색을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A 대령이 휴대전화를 분실하고 모든 비화 휴대전화의 암호키가 변경되기 전까지 약 나흘간 한국 군 수뇌부의 내부 보안통신 시스템이 도청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는 점이다. 민간 보안업체의 한 관계자는 “그 정도 시간이면 암호키와 일종의 운용체계인 알고리즘을 역추적 기법인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해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 청사 앞에 수신 장비만 설치하면 비화 휴대전화의 특정 주파수를 잡는 방법으로 도청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합참은 “국가정보원 등이 조사한 결과 암호 분석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A 대령의 비화 휴대전화가 분실된 2일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한 날이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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