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핵심 과제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최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불만을 품은 직원이 늘었다. 지난달 18일 현 부총리가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경제 분야 규제 기관들의 수장(首長)을 만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며 경제민주화 정책의 ‘속도 조절’을 당부하고 나서부터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새 정부의 정책 목표라고 알고 있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부총리가 갑자기 다른 주문을 하니까 관련 부처들은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라며 “생각만큼 경기가 좋아지지 않자 다급해진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중심을 잡고 정책을 이끌어가지 못하는 부총리에 대해 현장에서 불만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현 부총리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신제윤 금융위원장,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등 새 정부 1기 경제팀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1기 경제팀 출범 100일을 맞아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에도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헤쳐 나갈 선제적,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설문조사의 평가지표는 리더십 분야 전문가인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가 제시한 비전, 의견수렴, 책임감 등 10가지 항목을 사용했다. 동아일보는 2008, 2009년에도 이명박 정부 1, 2기 경제팀에 대한 평가를 동일한 방식으로 한 적이 있다.
○ 용기 없는 부총리
경제전문가들은 경제팀의 수장 격인 현 부총리에 대해 ‘컨트롤타워’에 걸맞은 통솔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리더십 항목인 용기(4.7점)와 통솔력(4.8점)에서 박한 평가를 얻었다. 이 같은 지적은 ‘리더’에게 요구하는 통상적인 주문만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무색무취하다’, ‘존재감이 없다’는 등 그간 현 부총리가 받아온 인상평과 더 관련이 깊다는 것.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경제상황이 혼란스러운 시기인 만큼 (반대 세력의) 팔을 비틀더라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對)국회 관계도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의 핵심이 입법과정에서 유지되도록 대(對)국회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정책처럼 부처 간 이견이 큰 정책을 갈등 없이 조정해 낸 능력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 ‘시장불통’ 한은 총재
김 총재는 커뮤니케이션과 의견수렴 부문에서 4.5점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시장과 불통(不通)하는 ‘독불장군’ 이미지를 벗어나라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이 더 신뢰하도록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각종 간담회나 기자회견에서 모호한 어법을 피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의사전달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김 총재의 뚝심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김 총재의 추진력을 적절한 방향으로 쓰면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 위원장에 대해서는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자질이나 리더십보다도 최근 불거진 ‘관치(官治)금융’ 논란의 수습, 금융공기업의 개혁 등에 대한 주문을 더 많이 받았다. 전문가들은 “‘관치 주의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국민들이 ‘금융귀족’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구체화되지 못하면서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경제민주화의 정의와 한계를 명확히 한 뒤 정책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재벌규제가 아닌 경쟁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잉 입법으로 치닫고 있는 국회의 공정거래법 개정 움직임부터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발 빠른 통화정책, 합리적 경제민주화
경제전문가들은 1기 경제팀이 잇달아 발표한 각종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비교적 좋은 평가를 얻은 부동산 종합대책도 이달부터 취득세 감면혜택이 종료되므로 추가 조치를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민주화 정책과 기준금리 인하는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 국제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통화정책을 적극 펼쳤어야 했다”며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시하되 거시경제 안전성을 높이고 성장을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평가를 감수한 신완선 교수는 “의견수렴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인 발상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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