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역사 잘못 다루면 민족영혼 다쳐”… 첫 대면 日에 일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한일 새 정부 출범후 첫 외교회담 25분 그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일 양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역사는 혼(魂)’이라는 일제강점기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은식 선생의 말을 상기시켰다. 윤 장관은 “역사문제는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한 개인 또는 한 민족의 영혼을 다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한일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측은 이날 역사 문제와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일본 측에 분명히 드러냈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함께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를 다짐했다.

○ 매달린 일본, 꾸짖은 한국

윤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이날 오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브루나이의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25분간 회동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를 계기로 양자회담을 한 후 10개월 만에 열린 것이다. 윤 장관은 4월 일본 방문을 추진하다 일본 고위 관료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로 이를 전격 취소한 바 있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담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집중됐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기시다 외상은 윤 장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본이 과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기존의 인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도 동일하다.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인식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갖고 한국과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소중한 관계를 착실히 진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최근 일본 우익단체들의 반한(反韓) 시위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시다 외상은 “일본은 법치국가로서 법질서를 지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고 배석자가 전했다.

이번 회담은 일주일 전 일본 측의 공식 요청으로 이뤄졌다. 정치인들의 잇단 과거사 망언 등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왕따’가 될 처지에 놓인 일본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5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 미중, 한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 동북아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일본은 특히 지난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안중근 의사 기념 표지석 설립까지 논의하며 ‘항일 공조 외교’를 편 것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은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정상회담 개최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달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평화헌법의 개정 가능성,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위백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양국 갈등을 심화시킬 요인이 산적해 있어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달 30일 도쿄(東京)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한국이 일본의 통화스와프 중지 때문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응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한국을 자극했다. 한일 양국은 3일 만료되는 30억 달러 규모의 원-엔 통화 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
▼케리 “北비핵화땐 북-미 정상화 가능”▼

한미일 외교 “北에 새 길 열려있다”… 中 협조 이끌어낼 공동전략도 마련

○ 북핵 문제에는 한미일 긴밀 공조


한일 회담에 앞서 윤 장관과 기시다 외상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담을 진행했다. 3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대응 방안을 협의하는 데 집중했다. 3국 외교장관은 특히 중국의 협조가 중요한 만큼 이를 확보하기 위한 공동 전략을 강구하기로 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고 이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경우 새로운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특히 케리 장관과 윤 장관은 서로 이름을 불러 가며 친밀감을 과시했다고 한다.

케리 장관은 회담 이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조치들에 응한다면 그 끝에는 남북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의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은 한국 일본의 새 정부가 출범하고 미국도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직후 북한의 위협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열린 것”이라며 “3국간 외교 협력 방향의 기조를 맞췄다(set the tone)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다르스리브가완=이정은 기자·도쿄=배극인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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